책상 정리부터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시험 기간에 공부를 하려면 책상 청소부터 하거나 쓸데없는 할 일이 생각나서 그것부터 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된 이유를 설명하자면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사립 고등학교를 다녔다. 긴 머리라면 땋아서 다니고, 단발머리라면 귀 밑 삼 센티미터를 넘지 않는 규칙을 지켜야 하는 여고였다.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등교해서 보충 일교시를 시작으로, 정규 수업 시간 1~7교시까지 한 후, 다시 보충 8교시가 이어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저녁 급식을 먹고 나서 야간 자율 학습을 밤 열 시까지 했다. 고등학교 삼 학년 때는 토요일도 학교에 갔다. 정독반은 한 시간 더, 무려 밤 열한 시까지 자습이 이어졌다. 정독반에는 독서실 책상이 주어졌다.
고등학생 때, 내리 삼 년을 꼬박 야간자율 학습을 했다. 그런데 그 시간을 멍하니 앉아 보낸 적이 많았다. 멍 때리기로는 일등을 자부했다. 늘 딴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그러다 보면 종이 쳤다. 잡생각이 유난히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해야 할 공부가 많은 데도 손에 잡질 못한 적이 많았다. 그놈의 공상하느라. 왜 그랬을까.
집중력을
엄한 데 쓰다니
오십 분으로 끝나지 않고, 그다음 시간까지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지기도 한다. 나의 공상 시간은. 얼마나 집중 있게 하는지, 그 시절 나의 공상 기록이 있었다면 지금 글감 걱정은 안 했지 싶다. 아쉽다. 적어둘걸. 이런 내 속사정을 야자 감독 선생님은 절대로 알 리가 없다. 자세가 엄청 올곧기 때문이다. 한 치의 흔들림이 없이 집중하는 태세를 가지고 앉아있다. 책상 위에는 스케치북 사이즈의 넘기는 형태의 긴 문제집이 펼쳐져 있고, 손에는 샤프가 꼭 쥐어져 있다. 혈기왕성한 여고생이 집중해서 하는 공상이란, 내 참, 얼마나 휘황 찬란했을까. 이 집중력으로 공부를 했으면 대학교 급이 하나 올라가지도 않았을까.
공상을 즐기는
소녀가 아니라
불안했던 거였다
이런 공상이 잦아지다 보니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 건 줄 알았다. 야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에게 고백한다. 나 오늘도 공부 못하고 딴짓했어. 신경이 예민한 탓이다. 과도한 과제와 경쟁과 성적에 대한 압박이 불안을 낳았고 게으름으로 이어진 것이다.
수능 감독이라도
하는 날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어른이 되어도 그렇다. 중요한 일을 앞둔 날이면 안절부절못한다. 예를 들어 내일이 수능 시험 감독이라면 나는 한 달 전부터 신경 쓰다가 일주 전부터는 스트레스가 최고조로 오르다가, 하루 전에는 심장이 콩닥콩닥거려 아무 일도 손에 잡질 못한다. 문서 작업을 하다가 계속 인터넷을 하기도 하고, 스팸메시지만 와도 스마트폰을 얼른 들고 만지작거린다. 수능 감독에 모든 마음이 쏠려 있어서, 집 안에서 그 어떤 일을 해도 허둥지둥 대기 때문에, 차라리 하루 동안은 수능 감독 매뉴얼을 정독한다. 받은 수능 매뉴얼을 읽고 읽고 또 읽어대느라 마치 내일 수능 칠 학생처럼 새까맣게 공부를 하고, 혹시나 일교시에 정감독으로 배정될까 싶어, 일교시 안내 사항을 가급적 외워버리려는 태세로 숙지해도, 마음이 영 편치가 않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신경성 수치가 높아 이런 큰 일을 앞두고는 불안하고 긴장을 하는 편이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고
남들보다 신경이 예민한 편이고 불안이 문제였다는 걸 알고는 릴랙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해도 잘 쉬지도 못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야지 하면서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보려고, 어떻게 하면 아무것도 안 하면서 마음이 편할까 싶어서, 다시 차라리 내일 할 일을 미리 정리해 두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식이다.
함께 가자
불안
몸을 움직이는 것이 도움이 됐다. 몸을 이용하는 이른바 ‘점진적 근육 이완법’이다. 불안해지면 온몸이 긴장을 해서 뻣뻣해지는데, 이때 온몸의 근육을 하나하나 이완시켜 보는 것이다. 목욕탕에 가서 냉탕과 온탕을 반복해 왔다 갔다 하면 온몸이 나른해지듯이 근육도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다 보면 나른해진다. 여기에 긴장과 이완을 유도하는 호흡법을 사용해 긴장하면서 숨을 들이마시고 이완하면서 숨을 내쉬면 훨씬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주의할 것은 ‘5초 긴장, 5초 이완’의 규칙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불안과 함께 가는 수밖에 없다. 다만 이제 달라진 것은, 내게 온 불안을 꼭 껴안고 쓰다듬어 준 다음에, 거리를 둔 의자에 앉혀두고 가만히 응시하는 여유가 있는 점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