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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애 Aug 01. 2023

여행에 춤 한 스푼 끼얹기

소셜 댄스 시간


직장인이 되고부터, 인생의 즐거움은 해외여행이라며 1년에 한 번은 꼭 일주일 이상 해외여행을 다녔었다. 

그 여행이 춤여행으로 바뀐 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여행에 춤을 한 스푼 끼얹은 건 러시아 여행이었다. 


오래된 내 버킷 리스트에는 ‘러시아 횡단열차 타기’라는 항목이 있었고 춤과는 상관없이 여행을 계획했었다. 

6개월 전부터 미리 준비했고, 열흘이라는 여행 기간 동안 어디에서 뭘 할지도 하나씩 정하면서 함께 춤추며 친해진 사람들에게도 신이 나서 자랑했다. 


“러시아 횡단열차를 타러 갈 거예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열차 타고 가려고요”


“너 그러면 블라디보스토크나 모스크바에서 춤추러 갈 거야?”


“네? 여행 가서 춤을 춘다고요?”


“거기도 웨스트 코스트 스윙 추는 댄서들이 있어. 모스크바는 커뮤니티 페이지가 있고 블라디보스토크는 Lyubov한테 메신저로 물어봐서 일정 맞으면 가봐” 


여행은 여행이고 춤은 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말을 듣고 여행에 춤을 합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Lyubov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는 댄서로, 그 동네 커뮤니티의 운영자였다. 

내가 가는 날짜에 춤을 출 수 있는지 물어보니 그날은 허슬 댄스(Hustle Dance)라는 다른 춤 커뮤니티와 연합해서 국제 춤의 날 기념으로 하루짜리 이벤트를 한단다. 




오후 6시부터 이벤트가 시작해서 시간에 맞춰 바로 이벤트 장소로 향했다. 

이벤트 장소는 한국의 지하 1층 연습실 같은 공간이 아니라 시내에서 멀지 않은 높은 건물의 5층 꼭대기였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올라가야 했지만 창밖 풍경을 보면서 춤을 출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아직 밝은 시간에 도착한 덕분에 춤추는 사람들 뒤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하늘을 뒤로하고 춤추는 사람들은 훨씬 생동감이 넘쳐 보였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고 한편에서는 옷을 갈아입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곧 있을 대회를 위해 깔끔하게 차려입고 서로의 등 뒤나 엉덩이에 번호표를 달아주고 있었다.(대회에서 번호표는 리더의 경우 등 뒤에, 팔로워는 허리 아래, 엉덩이에 단다. 춤을 추면서 상대방의 손이 잘 닿지 않는 위치다.) 


처음 본 허슬 댄스 대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대회가 시작되었는데 허슬 댄스 대회가 먼저 진행됐다. 허슬을 직접 춰보진 않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동작은 한 패턴이 끝날 때마다 한 팔을 옆으로 뻗는 것이었다. 한 번씩 타이밍이 맞을 때면 대회에 참가한 여러 커플이 다 같이 팔을 쭉 뻗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허슬 대회가 끝난 뒤에는 웨스트 코스트 스윙 대회가 이어졌다. 예선에서는 여러 커플이 한 번에 대회를 치렀고, 뒤이어 본선에서는 한 커플씩 앞으로 나와서 진행했다. 심사위원이 따로 있지는 않았고, 본선에 나간 사람들이 서로를 채점했다. 각자 채점판을 들고 다른 사람이 춤추는 걸 보면서 점수를 표시하다가 자신이 춤출 차례가 되면 랜덤하게 뽑은 파트너와 즉흥적으로 춤을 추는 것이다. 



예선을 구경할 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블라디 보스토크의 댄서들은 리딩과 팔로잉을 둘 다 하는 댄서들이 많았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리딩과 팔로잉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내가 러시아 여행을 갔던 6년 전의 한국에는 남자 팔로워나 여자 리더는 거의 없었다. 블라디 보스토크에서는 역할을 둘 다 하는 댄서들이 많았던 덕분에 본선에서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가 추는 상황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역할인데도 남자 팔로워나 여자 리더가 춤을 잘 추니 괜히 더 멋있어 보였다. 




대회와 공연은 3시간 동안 이어졌고, 모든 행사가 끝난 뒤, 소셜 댄스가 시작됐다. 해가 진 뒤라서 마냥 어두울 것만 같았는데 이벤트장에 은은한 조명이 들어오니 그전과는 다른 공간에 온 것 같았다. 




소셜 댄스 시간에 춤을 신청할 때는 허슬 댄서와 웨스트 코스트 스윙 댄서가 섞여 있던 만큼 꼭 먼저 확인이 필요했다.


“춤출래요? (Shall we dance?)”


“저는 웨스트 코스트 스윙 댄서예요. (I’m west coast swing dancer)”


“당신은 웨스트 코스트 스윙을 추나요? 허슬을 추나요? (Are you do west coast swing? or Hustle?)”


그 지역에서 춤추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의 얼굴을 알고 있지만 그 사람들에게 나는 이방인이었다. 

그래서 신청할 때 내가 추는 춤을 먼저 언급하거나 상대방이 어떤 춤을 추는지 얘기해야 춤출 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웨스트 코스트 스윙 댄서라도 남자가 팔로잉을 하고 여자가 리딩을 할 수 있다. 처음 만난 댄서고, 그 사람이 어떻게 추는지 본 적도 없다면 리더인지 팔로워인지를 물어보는 게 좋다. 물론 귀찮다면 그냥 신청해도 된다. 

그러면 상대방이 먼저 물어볼 것이다. 춤 신청을 했는데 상대방이 리딩과 팔로잉을 둘 다 할 수 있는 경우, 다시 물어보기도 한다. 


“리딩 할래요? 팔로잉 할래요?(Do you want to lead or follow?)”




러시아를 여행하는 열흘 중 춤을 춘 건 하루뿐이었지만 해외의 춤추는 공간에서 댄서들을 만난 건 여행 중 가장 즐거운 경험이었다. 

파란 하늘, 시내의 야경을 보면서 춤을 춘다는 게 이렇게 멋지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서 춤을 춰보니 매번 추던 춤인데도 새롭게 다가왔고 춤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도 깰 수 있었다. 

어디에나 있는 건 아니라지만 해외에 나가도 하던 취미를 이어서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발견이었다.




참고 영상 : 

여자 리더 - Samantha Buckwalter & Mia Paster Swingtacular 2022 - Kathleen Sun

 남자 팔로워 - Florian Simon & Phoenix Grey at SwingVester - West Coast Swing

Phoenix Grey는 음악을 너무 잘 표현해서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팔로워이기도 하다. 리더로 춤출 때도 음악을 너무 잘 듣고 부드럽게 리딩해서 구름 위에서 신나게 춤추는 기분이 든다.




이 글은 "여행에 춤 한 스푼"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일부 글을 삭제하였습니다.

책에 모두 수록하기 어려웠던 사진과 자료, 영상과 관련된 내용은 남겨두었습니다. 

남아있는 글로도 이해할 수 있도록 일부만 삭제하였지만 전체 글을 읽고 싶으시다면 책은 아래 링크를 통해 구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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