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댄스 시간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에 있는 롤리(Raleigh)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보름 정도 되는 일정이지만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으니 주말에는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미국 동부는 한국에서 비행기로 최소 16시간, 환승을 해도 20시간이 걸리기에 큰맘 먹고 가야 했다. 그 때문에 같은 커뮤니티에 미국 서부까지는 춤추러 가도 동부까지 가 본 사람은 드물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간 사람이나 겨우 알까.
주변에 롤리를 아는 사람이 없어서 구글에서 검색했고, 다행히 웨스트 코스트 스윙 커뮤니티를 찾을 수 있었다. 소셜은 평일에 있었지만 행운의 신이 도운 건지 일정 중 주말에 일일 워크숍이 예정되어 있었다. 나를 위한 일정인가 싶어 미리 커뮤니티 운영자에게 연락을 해두었다.
아쉽게도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출장 기간 내내 아침부터 자정까지 계속 일해야 했고 평일에 있는 소셜에는 갈 수 없었다. 주말에는 쉬나 했더니 시차 덕분에 토요일 늦은 오후부터 저녁까지 업무를 해야 했다.
다행히 워크숍은 업무 시간 전에 열려서, 일어나자마자 워크숍을 듣고 일이 끝나는 대로 춤추러 갈 수 있었다.
워크숍이 열리는 곳은 상가들만 있는 건물 1층이었다. 한국과는 다르게 건물이 단층이었고 모든 가게들이 큼직해서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데에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댄스 스튜디오의 이름을 찾으며 건물을 한 바퀴 돌았지만 이름이 작게 표시되어 있고 예상하지 못한 위치에 있어서 한참 헤맸다. 마침 미국은 폭염으로 뉴스에 나오던 시기라 우버에서 내려서 돌아다니는 잠깐 사이 땀범벅이 되었다.
워크숍에는 신기하게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 제법 많았다. 한국에도 나이가 있는 분들이 제법 있긴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할 정도의 나이대는 아니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 때문에 나이가 들어 보이나 싶었지만 차마 직접 나이를 물어보진 못했다. 나중에 페이스북 친구가 된 뒤 알았지만 손주가 있는 사람이 많았다. 은퇴할 때가 되어 배우자와 함께 춤을 배우러 온 사람도 있었고 이미 미국의 댄스 업계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사람도 있었다.
워크숍이 끝나고 동네에서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따로 연습을 하거나 식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출장으로 나온 탓에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일을 마치고 다른 동료들이 호텔로 쉬러 갈 때 냉큼 옷을 갈아입고 소셜 장소로 향했다. 늦은 시간에 혼자 돌아다니기에는 위험해서 우버를 타고 이동했다.
워크숍 장소로 가는 길도 비슷했지만, 롤리에서 우버로 이동하는 길에는 높은 건물은 찾아볼 수 없었고 도로나 단층 건물만 보였다. 롤리의 소셜 장소는 로퍼 비치 클럽(Loafers Beach Club)이라는 곳이었다.
역시나 단층 건물이었고 주차장이 넓게 갖춰져 있어서 차로 오기에는 편할 것 같았다. 가게 중간에 춤을 추기 좋게 무대가 갖춰져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여느 바(bar)와 다를 바 없었다.
바텐더가 있는 바(bar)를 둘러 테이블이 있었고 무대를 둘러싸고 구경할 수 있는 테이블이 있어서 다 같이 둘러앉아 술 마시며 구경하기도 괜찮아 보였다. 술도 파는 곳이라 그런지 입구에서 신분증 검사도 했는데 미성년자는 술만 못 마시고 춤은 출 수 있는 건지 춤도 못 추고 돌아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바(bar)의 분위기 때문인지, 나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춤출 공간이 넓었는데도 춤추는 사람 절반에 술 마시며 앉아서 대화하는 사람이 절반이었다. 춤추러 나갈 때도 바로 춤추자! 하고 냅다 춤추는 사람들보다는 가볍게 통성명하거나 안부를 나누며 춤을 추는 분위기였다.
소셜에는 워크숍을 들으면서 봤던 사람도 있었고 처음 본 사람도 많았다. 좋았던 것은 얼굴을 익힌 사람이거나 상관없이 먼저 춤을 권하고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Robin이 먼저 춤을 신청하며 맞아주고, 다른 리더들도 춤을 신청해 주어서 어색하지 않게 어울릴 수 있었다.
새로운 얼굴이라며 어디서 왔는지, 무슨 일로 온 건지 물어보고는 근처의 다른 웨스트 코스트 스윙 커뮤니티에서 여는 소셜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특별한 얘기도 아니었는데 먼저 말을 걸어주니 반겨주는 것 같아 왠지 모를 따뜻한 기분이었다.
나의 소셜은 주로 춤에 집중되어 있어 대화할 시간도 없이 춤만 추는 시간이었는데, 롤리의 소셜 댄스는 정말 사교를 위한 시간 같았다. 춤을 추면서도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앉아서도 대화를 나눴다.
춤을 신청하려다가도 이야기꽃이 피어있으면 한 곡 동안 못다 한 얘기를 하고 나서 춤을 추러 갔다.
이제는 해외로 출장을 갈 일이 잘 없지만, 이때의 기억은 다시 해외를 가게 되면 꼭 소셜이 있는 곳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리 춤을 많이 춘 것도 아니었는데 유독 마음에 남는 따뜻한 장소였다.
이 글은 "여행에 춤 한 스푼"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일부 글을 삭제하였습니다.
책에 모두 수록하기 어려웠던 사진과 자료, 영상과 관련된 내용은 남겨두었습니다.
남아있는 글로도 이해할 수 있도록 일부만 삭제하였지만 전체 글을 읽고 싶으시다면 책은 아래 링크를 통해 구입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