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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리츠베이, 마음이 머무는 곳

아낌없이 주는 그곳

by livethedreamlifegoeson

예전 뉴질랜드 북섬의 최고 북쪽 지역에 살 때 남편과 함께 참 많이도 낚시하러 다녔었거든. 그런데 가장 기억에 남고 가슴에 울림을 주었던 곳이 있어. 바로 스피리츠 베이.


스피리츠베이에 처음 갔을 때의 그 감정을, 솔직히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차에서 내리자마자 들려오던 잔잔한 파도 소리, 언덕 위로 펼쳐진 초록빛 풀밭, 그리고 그 위에서 느긋하게 풀을 뜯고 있던 야생마들.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았어. 그 풍경 속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득 찼던 기억이 나.


가끔은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어. 한 번은 작은 블루 펭귄을 만났는데, 그게 얼마나 귀엽고 또 웃겼는지 몰라. 바다 쪽에서 어설프게 걸어오던 그 녀석은 우리가 있는 걸 보더니 딱 멈춰 서는 거야. 잠깐 얼어붙은 것 같더니 이내 허둥지둥 도망가기 시작했어. 문제는 짧은 다리로 도망가는 게 너무 어설펐다는 거야. 뒤뚱뒤뚱 걷다가 결국 발이 꼬였는지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어.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우리 모두 웃음을 참느라 애썼지. 다시 일어나 도망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이곳이 정말 특별한 곳이라는 걸 새삼 느꼈어. 스피리츠베이는 단순히 자연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 자연 속 생명들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거든.


낚시도 장난 아니야. 해변에서 그냥 던지기만 해도 큰 카하와이들이 줄줄이 잡혀. 파도가 세게 칠 때는 물고기들이 지나가는 게 보이기도 해서 더 신기했지. 물이 빠지면 진입할 수 있는 돌길 따라서 작은 섬 끝까지 가서 섬과 섬 사이로 낚싯대를 던져보면, 돌돔이나 도미, 마오마오 같은 물고기들이 잔뜩 걸려. 그리고 해변 끝 돌섬 쪽에서 카하와이를 미끼로 쓰면 1미터 넘는 킹피시도 잡을 수 있다고 하더라. 진짜 손맛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겠지.


그리고 한 번은 동네 로컬 애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모래사장에서 사륜구동 바이크를 타고 놀더라고. 해변이 온통 떠들썩해졌는데, 그게 또 분위기랑 잘 어울리는 거 있지.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곳이 단순한 자연 명소가 아니더라. 마오리족한테는 신성한 공간이었대. 이름 그대로 모든 영혼들이 그곳을 통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더라. 그래서 장례식을 할 때 꼭 한 번은 들르는 곳이라고 했어.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그곳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어. 뭔가 그 고요한 분위기랑 파도 소리, 그리고 그들의 믿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는 느낌?


우리 그곳에서 진짜 자주 놀았거든. 캠핑도 하고 낚시도 하고, 자연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기분이었어.


그 돌길, 성게와 홍합이 가득한 돌섬 가장자리, 낚싯줄에 걸려 올라오던 물고기들. 그 모든 순간이 나를 스피리츠베이에 더 빠져들게 했지.


캠핑을 하며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본 적도 있어. 우리가 텐트를 산 후 처음 갔던 캠핑이었는데. 그때 느꼈던 고요함과 경이로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 스피리츠베이는 그냥 자연을 즐기는 곳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깨닫게 해주는 그런 곳이야.


스친들도 언젠가 꼭 가봤으면 좋겠어. 그곳에 서면, 그냥 보는 풍경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감동이 스피리츠베이는 그런 힘을 가진 곳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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