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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활공작소 Jun 26. 2020

연극영화과 졸업한 그가 영업사원이 된 이유는?

개그맨이 되고 싶었던 영업사원의 이야기

우리 회사엔 콜롬보 형사가 있다. 아니, 콜롬보 형사가 실사판이라면 이 사람이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한 사람, 바로 컨텐츠세일즈사업부서(이하 영업부)의 전형권 팀장 되시겠다. 그는 생활공작소가 아장아장 막 걸음마를 떼던 시절, 그러니까 생활공작소의 빼놓을 수 없는 스테디셀러, 이 계절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4개입 한 상자 구매해놓으면 딱 좋은 제습제가 세상에 출시되기 전부터 생공인으로 함께했다. 


컨텐츠세일즈사업부 전형권 팀장


현재 그는 영업부 전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각 담당자들이 더 좋은 기획전을 할 수 있도록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한단다. 이런 업무와는 달리 어렴풋이 들려온 그의 소문은 화려했다. 지금은 비록 생공의 콜롬보 형사지만 과거에는 끼 많은 사람은 다 모여있다는 연극영화과를 전공하고, 돌연 직업군인으로 지내다가 현재 생공인이 되어버렸다. 아니, 이 맥락 0%의 그를 어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당장 인터뷰를 제안했다. 


이렇게 얼굴을 공개해도 되냐고? 이런 과거는 이제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다...


언젠가는 꼭 한번 연기를 하고 싶어요.


생공의 정령이 되어버린 그의 과거는 화려했다. 소문처럼 연극영화과를 졸업했고 직업군인으로 지내다 생공인이 되었다. 연극영화과에 왜 가고 싶었냐는 물음에 쿨하게 “아, 허허.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아하, 그럼 군인은 왜요? 했더니 ”친구가 ROTC 해볼래? 했는데 붙어버렸어요. 허허. 그리고 군인이 됐어요. 허허” 란다. 뭐지, 이 사람.


“저는 어릴 적부터 이건 꼭 되어야지! 정말 하고 싶다! 싶은 게 없었어요. 전부 우연한 기회에 된 거죠. 연기는 장학금 때문이라고 하긴 했지만 한 번쯤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연기자 보단 개그맨이 더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것도 생각만 하다 말았어요. 군대를 가야 했거든요. 그래도 연극영화과에서 배운 연기력을 사는 데 모두 쓰고 있습니다. 뭐, 다 이런 척, 저런 척하며 사는 것 아니겠어요? 허허. 지금은 생활공작소라는 무대에서 생공인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말끝마다 붙어있는 “허허”는 전 팀장의 시그니처 웃음이다. 배나 머리를 긁으면서 “허허” 하는 전 팀장. 그에게 전공을 뒤로하고 선택한 이 일이 힘들지는 않은지 물었다. “어려울 게 뭐가 있어요. 하면 다 늘고, 못하면 혼나고, 다시 하고... 영업은 하나도 몰랐는데, 저도 와서 다 배웠어요. 좋아요. 재미있고.” 이렇게 말은 하지만 연기에 대한 마음은 남아있더라. 연기도 시간과 마음을 많이 써야 하는 작업이라 여유가 생기면 언젠가는 꼭 한번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고.



자꾸 들여다보고 싶은 그의 레이아웃....  빠져든다 빠져들어.


지금은 영업부의 팀장님이지만, 막 입사했을 때는 *CS, *AMD, 디자인까지! 생공의 만능봇이었다. 그가 입사한 초기 생활공작소는 소수정예(?)로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해야 했다. 그만큼 일도 많지 않았지만 분명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시절이었다.


“입사 초기에 했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지만 CS와 디자인 업무도 했어요. 영업보다는 서포터 느낌이 강했죠. 포토샵은 대학교 다닐 때, 필수 교양으로 들은 거였어요. 배운 기억을 더듬어서 하긴 하는데 레이아웃에 서툴렀어요. 허허. 배치에 집중하면 제품수가 달라지고 그랬죠. 예를 들면 제습제가 24개여야 하는데 28개라던가...(웃음)”


뿐만이 아니다. CS 업무도 했던 그는 고객의 클레임에 직접 만나 제품을 교환해주기도 했다고. 카톡 친구라 가끔 근황도 엿본단다. 지금이야 웃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생활공작소 초기 갖은 고생을 다 했을 전 팀장을 생각하면 웃프다. 


*CS : 고객으로부터 서비스나 물건에 대한 불만족 의견을 대처하는 업무

*AMD : 새로운 상품을 등록, 검수하고 상품과 관련된 것을 모니터링하며 시장조사를 진행하는 업무 


회사요? 만족도는 별 4.9개! 이유는…


생활공작소 초창기부터 일해온 멤버인 만큼 그의 업무 만족도가 궁금했다. 인터뷰 직전에 솔직하게 말해달라 부탁했더니 그는 4.9점으로 측정했다. 왜 0.1점을 뺐냐 묻자 당당하게 5점 만점에 5점을 주면 너무 인위적이지 않냐 하더라.


"5개를 다 주면 너무 인위적이잖아요. 저는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생활공작소에서 일하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요. 해외 수출 쪽인데요. 잘 모르지만 배우고 싶더라고요.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을 주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뒀어요."


업무적으로 만족스러운 점은 미팅을 자주 나간다는 점을 꼽았다. 다양한 사람들, 경험, 생각을 들을 수 있어 좋다고 했지만 말의 행간에는 하루 종일 사무실에만 있으면 답답하다는 뉘앙스가 은근히 숨어있더라. 이야기를 나눠보니 전 팀장이 0.1점을 제외한 이유를 알게(?)됐다.


"저는 체육대회가 좋았어요. 문화데이처럼 적은 수가 모여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은데 같이 땀 흘리면서 게임하는 것도 참 좋더라고요. 한 번씩 나가긴 하는데 딱 정해진 게 아니라서 조금 아쉬워요. 그리고 정말 없는데 굳이 하나를 꼽자면, 왜 그런 날 있잖아요. 눈 떴는데 9시 일 때. 많은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 적이 있었는데 아차! 싶더라고요. 그래서 뭐… 말없이 늦어도 되는 지각 날이 있으면 어떨까... 이런 생각 정도만 해봤어요."


직원들이 사용하는 사내 메신저 속의 전형권 팀장. 그는 동료 이름을 자주 잊어버린다.


말에 영혼을 담으면 좀 나아질까요?


전형권 팀장을 보고 만능'봇'이라 붙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생공에서 리액션의 일인자인데, 놀랍도록 영혼이 없다. 그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좋아요! 좋습니다!인데, 사람들은 그의 대답을 들으면 꼭 진짜요? 진짜 좋아요? 진심이에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는 주로 큰 불만이 없어서라 했지만, 그로 인해 고민되는 일도 있다고.


"팀장이 되면서 좋다고 말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어요. 개인적으로 좋다는 기준이 넓다 보니 관계적인 부분에서 곤란해지더라고요. 저는 다 괜찮다 넘어가는데, 괜찮지 않은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세심하게 챙기진 못해요. 그렇다 보니 동료들은 섭섭해하고... 그래서 일 끝나고 이야기나 할 겸 술자리를 가지면 또 난감한 부분이 있어요. 듣다 보니 끝이 없는 거예요. 2년 전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분들도 있고... "


술자리가 끝나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경우가 꽤 많다고. 전 팀장은 이런 점을 올해의 미션으로 삼았다. 예전에는 듣고 그렇구나, 하고 인지 했다면 요즘은 어떻게 해야 하지?를 고민한다고.


"돌아보면 제 말투가 문제가 있었어요. 상대를 충분히 이해하면 되는데 저도 모르게 그게 왜요? 문제 있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이러다가 사람이 말에 베이겠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점을 사람들이 말에 영혼이 없다는 말로 대신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예쁘게 말하는 법을 많이 배우고 싶어요. 메신저 할 때 말끝마다 물결(~)을 붙이기도 하고요. 허허"




전형권 팀장은 많은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배울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행운이라고 많이 느낀다더라. 그는 주변에 이야기도 잘해주고, 들어주고, 심리적으로 지지자가 되어 주는 사람들이 있어 닮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냐 묻자 그는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모두 열심히 노력하는데 따뜻한 말 위로 한마디 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제가 늘 항상 웃으면서 좋게 이야기할 순 없지만, 좋은 일이 있다면 진심으로 기쁜 마음으로 함께 축하하는 팀장이 될게요."


말하는 내내 준비해온 책이라도 읽는 건가 싶어 힐끔 거렸지만 단지 영혼이 없었을 뿐, 아니 말투가 그랬을 뿐 그는 오랫동안 고민해온 답변을 성실히 하는 중이었다. 이제 와서 약간의 반성을 해보자면 사실은 전형권이라는 인간의 화려한 과거를 미끼 삼아 업무 전반의 이야기를 파려 했지만, 자기 인지능력이 높은 인간형이라 인간 전형권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결국 업무 전반적인 이야기는.. 브마부 이야기처럼 따로 준비할 테니 조금만 기다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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