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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빙워터 Oct 01. 2023

연년생 언니의 품격

피그말리온 효과

첫째는 15개월 만에 동생이 생겼다. 한참 예민한 재접근기(엄마만 다시 찾는 시기)에 엄마가 낯선 아기를 데리고 집에 왔으니 충격이 컸을 테다. 처음에는 얼떨결에 잘 지내나 싶더니 곧 물리적 행사가 시작됐다. 동생 얼굴 쪽으로 털썩 앉아버리기, 팔을 지긋이 밟기 같은 귀여운 동작에서  곧 꼬집기, 깨물기, 밀치기, 넘어뜨리기 등 위험천만한 일들로 급변했다. 


참 마음이 힘들었다. 내 자식이 맞는데 때린 놈도 내 새끼라니..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문제였다.  혼내기, 달래기, 꼬시기 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혼날 때 잠시 뿐 돌아서면 다시 사고가 발생했다. 한 번은 동생을 깨문 채로 앞으로 넘어졌다. 그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충격적이고 두렵기까지 했다(둘째 머리 쪽에 뾰족한 게 있었으면 정말 큰 사고가 일어날뻔했다) 해결방안이 필요했다. 일전에 경험한 대로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열심히 구글링 한 끝에 '피그말리온효과'를 발견했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무언가에 대한 사람의 믿음, 기대, 예측이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경향을 말한다. 비슷한 심리학 용어로는 플라세보효과, 자기실현적 예언효과 등이 있다. 보통 자기 계발서에 많이 봄직한 용어들이다. 믿는 대로 됩니다. 의지만 가지세요, 꿈이 현실이 될 거예요. 뭐 이런 뜬구름 잡는 내용들은 평소에 불신하는 편이다. 근데 피그말리온효과가 교육적으로 효과가 있다는 글을 보고 적용해보고 싶어졌다.


마침 사건이 터졌다. 둘째가 언니 인형을 들고 도망가다 잡혀서 맞기 직전이었다. 평소 같으면 둘째가 언니 물건을 도취한 행위에 대해 혼내고, 동생을 때린 첫째의 행위에 대해 혼낸다. 이번에는 방법을 싹 바꿨다. 때리기 전에 손을 막고 둘째를 먼저 혼냈다. 그리고 첫째에게 물었다. 너는 동생한테 아끼는 물건도 양보하는 언니야 설마? 너  벌써 마음 넓은 언니가 된 거야? 아직 씩씩대고 있었지만 추켜올린 손이 민망한지 다시 내려놓았다. 나와 아내는 북한군대 물개박수를 1분가량 쳐댔다. 첫째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 그 순간 나는 가능성을 포착했다.


그 후로 칭찬하고 기대하는 말을 마구 했다. 처음에는 칭찬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때렸다. 어떨 때는 잠시 참았다가 다시 가서 때렸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에게 자기 물건을 양보했다. 아빠엄마는 무한 칭찬과 박수세례로 보답했다. 과연 넌 역시 진짜 멋진 언니였어. 꼭 착할 필요는 없지만 넌 진짜 착한 것 같아. 이렇게 칭찬받는 경험조각들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첫째가 동생에게 양보하고 내게 달려와서 말했다. 나는 동생에게 양보했어요. 저 좋은 언니예요. 그때 나는 첫째가 동생을 심하게 때렸을 때 느꼈던 아픔보다 두 배는 큰 감동을 느꼈다. 


연년생을 키우다 보면 매 순간 정신없다. 혼돈의 시간들을 버티려면 질서가 필요했고 그 규칙들을 유독 첫째에게 들이미는 경우가 많았다. 함께 웃고 즐기기에도 부족한 시간들을 혼내는데 많이 허비했다. 첫째는 이제 32개월인 아기다. 근본 없는 뇌피셜 훈육법을 고수하기보다 기대하고 지지하는 말을 더 해줘야겠다. 


PS. 피그말리온 효과를 실험하면서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1. 넌 착한 언니니까 양보해 줄 수 있지?

   - 매우 큰 부작용만 더 생겼다. 아이를 언니라는 틀에 넣고 행동을 요구하니 반발심만 생겼다. 처음에는 언니라는 역할보다 두 명을 동등하게 두는 표현들이 더 낫다. 

  2. 칭찬했는데 왜 그렇게 행동하니?

    - 칭찬과 격려의 말을 진탕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때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때 내 말을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어 때린 행위자체로만 혼내지 않고 뭔가 또 다른 감정을 얹어 혼내게 된다. 이건 아이가 기가 막히게 캐치한다. 칭찬을 했든 아니든 평소와 같이 똑같이 혼내야 한다.

  3. 눈치를 봐가면서 시전 해야 한다

    - 아이가 정말 화가 나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은 그냥 입 닫는 게 좋다. 그 상황에서 어설프게 입을 댔다가 요단강을 건널 수 있다. 특히 딸은 더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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