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을 기다리다가

이상하고 이로운 페미니즘

by 혜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상하게도 ‘읽어야 할 책 목록’은 길어지기만 한다. 그 목록들을 아래로 쭉 스크롤하다가 ‘아직 읽지 않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책들’에 관해 생각하면 눈앞이 아득해질 정도다.

- 나 그동안 뭐 했지?


사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사는데 별 문제는 없다. 아이 한글과 수학을 가르치는 데는 딱히 다른 책 읽기가 필요 없었으니까. 게다가 매일 한 두 권은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는 걸. 그런데 뭔가를 쓰기 시작하면서 가지고 있는 단어가 너무 없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아이를 낳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10년 동안 읽었던 책은 <베이비 위스퍼>,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그 외 이유식 책들.. (책 제목이 확실히 기억나지 않아 검색해보니 아직도 베스트셀러!) ‘말’하는 단어도 생각도 매일 반복되었다. 아이 기저귀는? 물티슈는? 밥은? 간식은? 낮잠은? 예방접종은? 영유아 검진은?

그렇게 책을 좋아하고, 주말마다 광역버스를 타고 강남 교보에서 하루를 보내던 내가 있었다. 매 달 나오는 문학잡지를 빠짐없이 읽고, 기다리던 작가의 신간이 나왔는지 검색해 보던 때가. 그리고 글을 썼다.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 작가로 등단하고 싶어서. 그때는 재능이 언젠가 나에게 올 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걸맞은 멋진 ‘작품’이. 그때는 여유로웠다. 나에게는 시간이 아주 많았으니까. 그때 쓰기 시작하면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재능은 쓰지 않는 자에게는 오지 않는다. 그저 쓰는 것, 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게 재능이었다.

아이를 가지면서 나는 글쓰기를 깨끗이 포기했다. 이제까지 ‘나’를 위해서만 살아왔으니 이제 ‘가족’을 위해, 아이를 위해 내 시간을 온전히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시 글을 쓸 일은 없을 거라고. 나에게는 재능이 없고, 글을 쓰고 싶었던 건 그저 내 욕심일 뿐이었다고 나 자신을 위로했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나는 개인의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누구의 ‘엄마’로서의 삶 밖에 남지 않았다고.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상하게도 나는 별로 변한 게 없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다. 당황스러웠다. 지금쯤이면 이미 늙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아이는 이제 ‘엄마’의 간섭 따위는 필요 없을 정도로 자라고 있었다. 내 삶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은 텅 비었다. 나는 다시 읽기 시작했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야망 있는 여자들의 사교클럽>은 30대 중반의 작가가 롤모델을 찾아 ‘한 발자국 먼저 간’ 여자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 은하선 작가의 한 마디를 기록해놓는다. “가부장제라는 건 남자들만이 만든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