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 유자녀 여성이 일을 시작하게 되면 일어나는 일들

이상하고 이로운 페미니즘

by 혜윰

<알바 자리가 나왔는데 조건이 어떤가요? 일을 시작하면 아이들이 혼자서 학원에 다니고, 한두 시간 정도 혼자 집에 있을 수 있을까요?>

맘 카페에는 종종 위와 비슷한 질문이 올라오곤 한다. 여러 댓글이 달리지만 종합해보면 자녀가 있는 기혼여성이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은 두 가지다. '얼마 이상의 월급'과 '도움을 받을 부모'가 있는가의 유무.





위의 조건을 기준으로 한다면, 나는 '아직' 일을 시작하기엔 일렀다. 둘째 아이가 어렸고, 월급도 한참 적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일을 시작했다. 나는 왜 일을 하고 싶어 졌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를 찾고 싶다'라는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아이 하원 후 함께 수다를 떨며 놀던 언니들이 하나 둘 취업을 하기 시작했다. '당당하게' 놀이터를 떠나던 그녀들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자연스럽게 나도 일을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 학원에서 모집 공고가 올라왔길래 전화를 걸었다.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었고, '설마 애만 키우던 아줌마를 뽑아주겠어' 하는 마음과 '만약 채용이 되면 다들 날 도와주겠지' 하는 마음 반반이었다. (그때는 뭐 그렇게 자신만만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면접 날짜와 시간을 잡았고 남편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남편의 첫마디는 "잘했다"라는 축하의 메시지가 아니었다. "왜 나와 의논을 하지 않았냐."라고 물었다.


순간 멍해졌다. 내 일을 하는데 왜 남편과 의논해야 하지? 남편은 일을 더 하는 것, 부서를 옮기는 것에 대해 나와 의논해서 결정하나? 아니다. 부장이나 팀장이랑 하겠지. 그런데 왜 나만 의논을 해야 하는 거지? 그것도 채용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지원하는 데에? 물론 아이들이 있었다. 내가 일하면 아이들은? 그때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일이 끝나면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학원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과거의 나..)


그렇게 나는 일을 시작하게 됐고,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물었다.


"너의 일이 나머지 가족- 아이들과 남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꼭 해야 하는 일이니?"


"그만큼 그 일을 사랑하니?"


"네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이니?"


"그 일을 통해 자아실현이 되니?"



남편에게는 '일'을 좋아해서 회사를 다니는 거냐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이 회사 다니는 게 너무 괴롭다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면 원래 일은 좋아해서 다니는 게 아니라고 했다. 다들 그렇게 가정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다고 말했다. (남편은 오히려 일을 하는 게 희생하는 거다!) 그냥 버티라고 했다. 버티다 보면 진급이 되고, 월급이 오르고, 일도 편해질 거라고.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남편과 나를 왜 '똑같이' 대우해 주지 않냐는 불만? 지금의 가족구조에서 '평등'한 대우가 가능한가? 누군가는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데? 엄마면서 아이들을 책임지지 않으려면 왜 (그것도 둘 씩이나!) 낳았지? 나는 끊임없이 나에게 되묻는다. (당연히 남편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내가 일해서 내가 너무 피곤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남편은 나에게 종종 "미안하다"라고 말한다. 미안한 이유는 자기가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해서 '내가 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어이가 없어서 친구에게 이 말을 했더니 '감동'이란다. 남자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구나. 남편이 돈을 잘 못 버는 것과 내가 일을 하는 것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지? 나는 돈 때문에 일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 아이들을 방치하면서 남의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있냐고. 그 일이 그렇게 좋냐고 묻는다. 결국 나는 지쳐서 대답한다. 아니야, 돈이 필요해서야. 나라고 남의 아이들 가르치면서 집에 있는 아이들은 까맣게 잊고 있겠어? 또다시 도돌이표. 미안해. 내가 못 벌고 능력이 없어서 너를 고생시키네. 이제 주말에도 근무할게. 그냥 집에 있느니 하루 나가면 급여가 얼만데. 애들은 네가 보면 되잖아.


다시 나에게 물어본다.


"정말, 아이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너의 일이 중요하니? 아이들은 엄마의 손길을 원해. 저녁에 (밥도 차려주고 말도 걸어주고 숙제도 봐주는) 엄마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응. 나는 내 일이 중요해."


아직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는 없지만 나는 '내 아이들만' 가르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내 아이 가르치는 건 돈을 못 받으니까. 내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으니까. 내 아이들에게는 엄마만 필요한 게 아니라 아빠도, 선생님도 친구도 필요할 테니까. 그래서 오늘도 수업 준비를 한다. 공들여 첨삭을 한다. '좀 더 나은' 방향은 없을지 고민한다. 내가 특별히 교육 사명감을 가져서가 아니다. 그게 내 '일'이니까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