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없는 아이와 불안한 엄마

이상하고 이로운 페미니즘

by 혜윰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불안하다. 내가 ‘엄마’로서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잘 자란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아이와 트러블이 생기지 않으려고 아이에게 맞춰주려 애쓴다. 대전제는 “아이에게는 문제가 없다.”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그럼 왜 나는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어 잠깐, 혹시 나의 어린 시절에 이해받지 못한 내가 아직 남아 있어서는 아닐까.


그럼 나는 잘 자라지 못했는가? 그건 우리 엄마의 탓인가? 사람들은 말한다. “그 시절엔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고. 그러니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그러면 ‘나’에게는 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나의 말투, 나의 관심, 나의 주의력을 아이에게만 집중하도록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가?


그런데 누가 나한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거지?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고 자책하고 후회한다. 아이가 영어, 수학학원을 다니고 있는 것만 해도 이미 부담인가? 나는 아이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 있는 건가? 집에서 문제집 풀기까지 하라고 하면 나는 ‘너무 많이 시키는’ 엄마인가? 스스로 계획을 짜라고 하니 ‘슬라임 만들기’만 달랑 써 온 아이에게 지우고 다시 공부 계획을 짜라고 말하는 나는 아이의 자율성을 해치고 있는 엄마인가?


나는 두렵다. 지금 내 선택이 아이의 더 나은 미래를 망쳤을까 봐. 내가 지금 너무 공부를 많이 시켜서 정작 공부해야 할 때 흥미를 잃고 안 할까 봐. 또는 내가 지금 공부를 안 시켜서 아이가 자신감을 잃을까 봐. 내가 부족한 부모여서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나의 불안한 감정이 아이에게도 전염될까 봐. 아이의 미래는 언제나 ‘핑크빛’이어야 하니까.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학습된 수많은 이미지들로 만들어 놓은 ‘엄마’의 모습. 그 모습은 내가 ‘되어야만 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나의 불안은 이상적인 엄마와 현실의 나 사이의 간극이 멀면 멀수록 심해진다. 현실의 내가 발끝만큼도 못 미친다는 걸 아니까. ‘인자하고 현명한, 모든 문제의 해결사인 그 엄마’는 언제나 나를 보고 있다. 아이들의 말을 무시하는 나를. 내 감정 그대로 아이들에게 퍼붓고 있는 나를. 이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는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