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9화. 닿아라
카제하야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훌륭한 인간이 아니거든.
그래도 내가 보기에는 멋있어 보이는데.
포기하라니. 뭘 말이야. 쿠로누마랑 사귀는 거? 아님 좋아하는 거?
멋있어서 카제하야를 좋아하게 된 걸까?
난 대체 뭐 때문에 카제하야를 좋아하게 된 걸까?
미워 죽겠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사귀는 그 여자애가 미워. 난 어떻게든 그 여자애를 떼어놓고 그 남잘 내 걸로 만들고 싶어.
남을 저주할 땐 무덤을 하나 더 파란 말이 있어요. 자기도 그 무덤에 빠질 각오가 필요하단 뜻이죠.
좋아하는 데 여친이 있다고. 역시 사랑 고민이 젤 많구나.
만약 카제하야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나도 뭔가 노력을 하려고 했을까. 그럼 지금이랑 뭔가가 달라졌을까. 아님 그래도 그냥 이대로였을까.
나 너랑 카제하야랑 사귀는 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어. 너희들은 다른 점이 너무 많아서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았고 같이 있어봤자 서로 부담만 될 거 같았거든. 그리고 사다코 넌 카제하야한테 벽을 하나도 못 느꼈다고 말했었지만 내가 보기엔 걔한테만 벽을 두고 있는 것 같았어. 다른 애들한테는 없는 벽이. 하지만 넌 알면 알수록 괜찮은 애더라고. 그래서 되도록이면 카제하야 같은 녀석은 빨리 잊고 다른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길 바랐던 거야.
사다코, 넌 웃는 얼굴이 훨씬 귀여운데. 하지만 지금 널 슬프게 만들고 울게 만들고 또 웃게 할 수 있는 건 카제하야뿐이겠지. 내가 응원해 줄게. 힘내! 사다코!
창피한 마음,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내 생각도 제대로 말 못 하고 솔직하게 웃지도 못했어. 카제하야한테서만 느끼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벽을 난 어느새 내 스스로 만들고 있었던 건가? 내 생각을 솔직히 말하면 카제하야는 언제나 진심으로 대답해 줬는데.
나 맞아. 쿠로누마는 나에 관해서 오해하고 있어. 하지만 쿠로누마는 여태까지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오해를 받고 살았어.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왔지. 네 말대로 난 쿠로누마와 정 반대라서 금방 화내고 질투도 많아. 쿠로누마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놈도 아니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도 아냐. 쿠로누마는 늘 카제하야 덕분이야라고 말했지만 항상 혼자 애쓰고 어떻게든 헤쳐나가려는 쿠로누마를 존경하고 있었던 건 오히려 내 쪽이야.
역시 굉장하다! 쿠로누마 사다코!
사와코! 쿠로누마 사와코야!
하늘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밝고 상큼하고 반의 중심인 아이. 존경과 동경의 대상. 하지만 내가 좋아하게 된 카제하야는 남들과 똑같은 평범한 남자아이였다.
됐어. 이제 됐어! 카제하야가 누굴 좋아하든 이젠 상관 안 해. 부끄럽고 창피하지만 날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볼래. 난 뭘 망설이고 있었던 걸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뒷모습, 쑥스러워하는 얼굴, 당황한 얼굴, 정색을 하고 화내는 얼굴, 진지한 얼굴, 슬픈 얼굴, 활짝 웃는 얼굴. 내가 그 전부를 갖고 싶다면 카제하야는 어떤 표정을 할까? 허물고 싶어. 카제하야와의 사이에 만든 벽을. 내 진심을 전부 다 전하고 싶어. 닿았으면 좋겠어. 닿아라. 닿아라. 닿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