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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Jun 14. 2020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다큐멘터리 영화 <달팽이의 별>을 보고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하여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거다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하여 잠시 귀를 닫고 있는 거다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하여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 조영찬


 사랑은 문화예술의 단골 레퍼토리이다. 드라마부터 영화, 조각, 회화, 문학에 이르기까지... 많은 예술가들과 작가들은 사랑에 대해 탐구하고 이야기하고 표현했다. 넘쳐나는 사랑이야기들은 때론 눈물짓고 때론 화나고 때론 숙연해지기까지 하는, 그야말로 다채로운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또 한 편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접했다. 바로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장편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영화 <달팽이의 별>이다. 이 영화는 시청각 장애를 앓는 영찬씨와 그의 아내 척추 장애를 앓는 순호씨의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일상을 그리고 있다. 영화 제목의 달팽이는 감각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남자를 상징한다.


 첫 장면은 부부의 연날리기로 시작된다. 달팽이의 별이라는 제목처럼 연에 꿈을 싣고 별에 맞닿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영찬씨는 자신은 우주인 같다고 했다. 끝없는 어두움과 심연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고 했다. 가슴 속에 품어온 그 별, 그 꿈에 의지해 삶을 살아가며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으리라.


 순호씨는 시종일관 영찬씨의 두 눈이, 두 귀가 되어 곁을 함께 한다. 영찬씨는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났다고 한다.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며 영찬씨의 등대가 되어주는 순호씨는 누가봐도 영락없는 천사이다. 비록 척추장애를 앓고 있어 등뼈가 툭 튀어나왔지만 비단결처럼 고운 그 마음만은 세계 최고 미녀의 미모에도 비할데가 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요새는 연애가 쉬우며 결혼은 거래라고 한다. 이혼도 더 이상 흉이 아니며 졸혼이라는 풍습까지 생겨난 세상이다. 이렇게 사랑이 쉬운 세상에서, 사랑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에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발견됐다. 서로가 혼자될 것을 걱정해 한날한시에 죽어야겠다고 말하는 두 사람. 그리고는 언젠가 혼자될 것을 염려해 혼자임도 준비해나가는 두 사람. 바위틈에서도 씨앗은 움트듯 두 사람의 삶을 향한 끝없는 투쟁이 더없이 감동을 자아낸다.


 영화 중간쯤에 영찬씨와 순호씨가 전등을 가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는 영찬씨가 순호씨를 목마 태워 전등을 갈려고 하지만 잘 안되고 다시 키가 큰 영찬씨가 혼자서 순호씨와 점화(점자를 구성하는 여섯 개의 점을 양손 검지•중지•약지의 손가락에 대입하여 점자의 각 번호에 해당하는 손가락을 점자형 키보드로 간주하여 가볍게 터치하는 의사소통 방법)로 소통하며 전구를 가는 데 성공한다. 이들의 삶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서로가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랑.


 이라크 전쟁 시절, 전쟁의 상흔으로 안면이 함몰된 남자 곁을 지키는 한 여자의 사연을 읽은 적이 있다. 흉측하게 변해버린 얼굴을 갖게 된 남자를 지키는 여자를 보면서 껍데기만 사랑이라는 자위하는 사람들 틈에서 성인(聖人)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과연 그런 사랑을 지킬 수 있을까 자문했었다. 그리고 오늘 또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며 다시금 사랑에 관한 생각을 가다듬는다. 사랑이란 내가 곧 그인 것. 서로가 서로인 그대와 함께 진실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조금 느리지만 온 감각으로 전진하는 달팽이처럼 그렇게 나도 사랑을 향해 전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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