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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Apr 21. 2020

첫사랑, 글쓰기의 시작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게 된 과정

     

 나에게 글쓰기는 첫사랑과 같다. 내 글쓰기는 첫사랑의 시작처럼, 그렇게 서서히 내 삶에 스며들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안 날 만큼 수줍게,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초등학생 때부터였을까? 나는 수업시간에 배운 시조 쓰기를 집에서 조용히 취미 삼아 원고지에 끼적이던 아이였다. 3장 6구의 형식에 맞춰 글을 쓰는 게 어찌나 재밌던지, 알록달록 사인펜으로 무늬 장식까지 해가며 나는 그렇게 글을 써댔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 내가 쓴 글들을 발견해 놀려댈 때, 나는 재빨리 감추며 소중한 첫사랑 대하듯 비밀유지에 철저를 기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시절의 나는 귀여운 구석이 있는 녀석이었다. 어쨌든 나는 몰래 쓴 시조의 재능이 발휘된 것인지 초등학교 6학년 때 교내 시조백일장 대회에서 당당히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학교 대표로 시 대회에 출전했다. 그런데 막상 시 대회에서는 아무 상도 받지 못했다. 그렇게 고양됐던 자신감은 한순간에 뚝 떨어졌다.


 그리고는 한동안 글쓰기를 멀리했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산출인 쓰기보다 투입인 책 읽기에 더 몰두했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그리스 로마 신화, 단테의 신곡,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투르게네프의 첫사랑과 같은 고전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생 시절 시조를 쓰던 나는 없어지고 탐독가의 모습만이 남았다. 수능시험을 대비해야 한다는 긴장감 아래 고전을 읽던 시간들도 점차 수능 언어영역 지문 읽기로 대체되어 갔다. 그렇게 글쓰기와 다시 조우할 일은 없는 듯했었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니 운명처럼 나는 또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동아리 활동으로 방송반을 택한 것이었다. 방송반 제작부가 되어서 방송작가처럼 매주 한 편의 원고를 써내야 했다. 사실 내가 원해서 간 것도 아니었고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간 거였는데, 4년 내내 쭉 눌러앉은 걸 보니 나와 적성에 잘 맞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꿈도 없이 애벌레처럼 하루하루를 살던 학생이었는데, 글쓰기만큼은 내 삶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그 와중에 여행 계획서 공모전에 뽑혀 홍콩과 마카오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마카오 올빼미 테마여행 이벤트 당첨자 발표 기사 http://news.imaeil.com/NewestAll/2007010308220721240) 다녀와서 쓴 여행후기는 신문에 기사로도 실렸다. 이때 나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봤다면 좋았을 텐데……. 첫사랑 특히 짝사랑이 흔히 그러듯 여러 일들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이 쉽게 생기지가 않았다.


 대학 동기들이 내 글쓰기를 칭찬해주었고, 작가의 소질이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저 기분 좋은 칭찬쯤으로 치부하고 흘려들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열정을 다해 임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글쓰기는 밀물처럼 다가왔다가 썰물처럼 멀어졌다. 후회만 남기는 첫사랑처럼.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했다. 간간이 글쓰기에 재능이 엿보인다며 칭찬을 들었지만 나 스스로 만족스러운 상태도 아니었고, 자신감이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한다뿐이지, 진짜 재능이 있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막상 에세이를 쓰려고 펜을 집어 들면 시작부터 엉망인 상태가 반복되었다. 안 되겠다 싶어 다시 탐독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러던 중 서른한 살의 어느 날, 친구와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 있는 독립서점에 들르게 되었다. 거기서 독립출판물을 처음 접했고 독립출판 강좌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글쓰기는 나에게 운명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6주간의 강좌를 듣고 대학시절 쓴 방송반 원고에 약간의 글을 첨가해 엮어 만든 독립출판물 <커피 한 잔과 음악노트>를 펴내게 되었다. 내가 책을 출판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축하를 해주었고 작가라며 호칭을 불러주었다. 그제야 내 기나긴 글쓰기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감이 샘솟기 시작했다. 내 원고를 처음 교정받았을 때의 두근거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수신자: 우진아 작가님이란 표시가 정식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의 세계에 처음으로 한 발을 내딛은 기분이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첫사랑에게 화답을 받은 것처럼 날아갈 듯이 기뻤다.


독립출판으로 출판한 나의 첫 책

 그때부터 글쓰기에 대한 내 사랑은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한겨레출판 등 각종 에세이 쓰기 수업을 찾아 듣기 시작했고, 글쓰기 관련 책을 사서 읽으며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맞춤법부터 자주 틀리는 표현, 자연스러운 표현, 시적 표현 등을 공부하며 좀 더 우아하고 세련된 글을 쓰는 법을 연구하고 연습했다. 이런 내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몇 번의 도전 끝에 브런치 작가 응모에도 승낙받을 수 있었다.


 물론 나는 과거의 위대한 작가들, 니체, 괴테, 헤세, 제인 오스틴 등에는 감히 필적도 못할 형편없는 글쓰기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 양치기 소년이 주인집 딸 스테파네트를 순수한 마음으로 사모했듯이, 그렇게 순수하게 글쓰기를 사랑하고 싶다. 비록 정확한 시점은 짚기 어려울 만큼 내 인생에서 우연히 시작되었지만,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 내 삶의 집합체로서의 한 편의 글을.


 글쓰기는 나에게 첫사랑과 같으며, 이러한 내 첫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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