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키다리 아저씨>를 대학생 때 처음 읽었다. 조금 늦은 나이긴 하지만, 이제 막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을 지나던 나에게는 꽤 풋풋한 재미를 안겨주었다. 주인공 주디는 가난한 고아원 출신인데 ‘우울한 수요일’이라는 제목으로 쓴 에세이가 후원자 눈에 들어 대학 등록금을 지원받고 공부할 기회를 얻는다. 그때 당시 미국에서는 가난한 고아 여자아이는 공부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글쓰기라는 재능으로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주디에게 푹 빠져들었다. 대학에서 교류할 친구도 찾지 못한 채 외롭게 지내던 나에게 주디는 긍정적이고 상상력 가득한 멋진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참 신기한 게 방송반에서 작가로 일하던 나처럼 주디도 후원자인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를 쓰면서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자신의 소식을 전한다는 게 공통점처럼 느껴졌다.
키다리 아저씨와 주디가 사랑이 엇갈리는 것처럼 보였을 땐 조마조마했지만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결혼한다. 누군가는 키다리 아저씨가 후원을 빌미로 학생이었던 주디와 연애감정을 키우고 결혼한 것에 대해 신데렐라 스토리라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엔 주디가 키다리 아저씨와 결혼한 건 주디에게도 커다란 행복이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주디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성장하는 모습을 편지로 지켜봐준 키다리 아저씨라면 주디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일테니깐. 그런 사람과의 결혼은 주디에게도 축복같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사실 주디는 짝사랑한 저비 도련님과 키다리 아저씨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기도 했는데 그 문제도 해결되고 말이다. (알고보니 저비 도련님과 키다리 아저씨는 동인인물이었다.) 또한 주디는 마냥 의존적인 성격도 아니고 스스로 학업도 열심히 하고 재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주디가 저비 도련님, 그러니깐 키다리 아저씨께 보낸 편지는 가슴뭉클하다.
지금 전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행복을 가졌으면서도 전보다 훨씬 무거운 기분이에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어요. 지금까지 저는 제멋대로이고, 게으르고, 태평스럽게 생활해 왔어요. 그건 지금까지 잃어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평생 동안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하는 소중한 보물이 생겼답니다. 당신이 옆에 없을 때는 자동차 사고라도 생긴 것이 아닐까, 간판이 떨어져 머리라도 다친 것은 아닐까, 세균이 든 음식을 모르고 먹은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만 하고 있을 거예요. 제 마음의 평화는 이제 사라져 버렸어요. 하지만 저는 원래부터 평범한 평화 따위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
저비, 이곳에 당신이 없어서 너무 쓸쓸해요. 하지만 이건 행복한 외로움이겠죠. 이제 우리는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요. 우린 진정한 서로의 것이에요. 드디어 내가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다니, 신기해요. 하지만 너무너무 행복해요. 난 이제 단 1초라도 당신을 슬프게 만들지 않을 거예요.
언제까지나 변치 않을 당신의 주디로부터
작가는 고아원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멀어졌지만 내 친구중에도 부모님이 안 계신 아이가 있었다. 그 때 주변에서는 고아라고 같이 어울리지 말라며 손가락질해서 화도 나고 속상했다.하지만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세계 고전 속 이야기들처럼 세상은 결국 따뜻하고 바른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이야기가 많아서 큰 위로와 용기를 준다.비록 일시적으로 불행하고 힘들지라도 좋은 사람들은 결국 만난다는 생각이 든다. 어렵고 힘든 처지의 사람들이 희망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를 담은 고전은 힘과 설득력을 가진다.
나도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처럼 내게 주어진 일을 책임감있게 처리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니며 꿈을 갖고 정진하다보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슬프고 절망적이고 힘들어도 꿋꿋이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