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카페테라스, 반고흐*고흐는 불안과 고독 속에서 평온을 찾고자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내가 최초로 불안을 느낀 건 언제일까?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악몽을 꾸고 난 후였던 것 같다. 아직까지도 그게 악몽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을 때 엄마와 아빠가 날 바라보며 쓰다듬어 주고 계셔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후에 느낀 불안은 중1 때 심각한 따돌림을 당하면서였다. 6학년 때 단짝친구가 중학생으로 진학하면서 8반 중에 같은 반이 된 게 반갑고 좋았는데 이내 그 친구는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날 따돌렸다. 그때 출산휴가 들어가신 담임 선생님 대신 기간제 선생님이 오셨는데 반이 하도 막장으로 치달아 담임선생님이 거의 3~4번이나 바뀌고 우린 거의 매일 체벌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래도 중2가 되면서 반이 9반으로 늘어 학급당 학생수가 줄고 1학년 때는 교실이 우리 반(7반)과 8반만 2층 구석진 곳에 있었는데 2학년때는 모두가 4층 한 라인에 있어서 분위기가 바뀌었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은 포켓몬스터의 고라파덕을 좋아하는 선생님이었는데 우리 반은 성적이 꼴찌였어도 선생님 덕분에 즐겁게 다녔다.
그 후에는 고1 때 처음 시험공부를 하나도 안 하고 중간고사를 쳤는데 반 석차가 중간이 나와서 엄청 불안해했었다. 그래서 2학기 때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반 3등을 했다. 그때 나는 어린 왕자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방명록에 팬 분들이 따스한 글과 그림을 많이 남겨 주셔서 참 위로가 되고 행복했었다. 친구가 “넌 내 라이벌이야.”라고 말해서 상처받기도 했지만, 내가 갑자기 성적이 오르자 담임선생님께서 관심을 많이 가져주셔서 좋았었다. 내가 진로상담 때 꿈이 없다고 말해서 혀를 끌끌 차기도 하셨었지만, 내가 자습시간에 여러 고전을 읽는 것을 보고 더 특별히 생각해 준 것 같다.
내 어린 왕자 홈페이지의 일부. 클라우드에 백업해 놨다. 방문자들이 남겨준 편지와 그림, 방명록(중간에 새로 바뀐 방명록)은 다시 봐도 참 따스하고 위로가 된다. ♡
그리고 그다음으로 기억나는 불안은 대학생 때 자취방에 누워있으면서 ‘내일도 같이 말할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어떡하지?’하며 불안에 떨었었다. 1학년 때 같이 놀던 그룹으로부터 배척당하고 새로운 동기를 사귀었지만 어느새 자신은 유학을 간다며 휴학하고 나는 또다시 혼자 남겨졌다. 그리고 4학년 때는 더 상황이 심각해서 많이 무서웠지만 그때는 오직 임용공부에만 매달리느라 불안을 느껴도 애써 억눌렀다.
결국 시험에 떨어져서 노량진에서 재수공부를 하게 됐지만 스터디 언니가 있어서 안심이 됐다. 원래는 남자 둘 여자 둘 넷이서 같이 하려고 했었는데 갈라져서 언니랑 둘이만 하게 됐다. 그런데 그 남자 중 한 명이 독서실에서 마주쳤는데 영문도 모르는데 나한테 소리를 치고 화를 내서 정말 무서웠다. 아주 작은 소음이 거슬린다고 크게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독서실에는 정말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말 그런 긴장된 분위기에서 나는 더 조심하게 되고 위축되었고 때론 폭력처럼 느껴졌다.
EBS 초대석의 김석 철학과 교수는 ‘불안은 삶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불안은 고유성과 나다움을 찾고자 하는 신호라고 말씀하셨다. 나를 아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삶이 시작되므로 자기 성찰이 중요하다고 한다. 완전히 이해가 가는 건 아닌 것 같다. 나에게 불안은 삶의 원동력이라기보다는 생존본능에 가까웠다. 누군가가 나를 해칠 것 같은 불안, 벼랑으로 밀어낼 것 같은 트라우마, 사회에서 고립되고 영영 회생하지 못할 것 같은 과도한 자기 비하가 불안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김석 교수님 말씀처럼, 내가 이렇게 불안을 느낌으로 인해서 나의 과거 상처와 트라우마가 이해되고 어떤 식으로 치유해야 할 지도 방향을 가늠해 가면 좋은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 같다.
소외된 욕망은 남들의 인정에 치중하지만 건강한 욕망은 나의 본질에 부합한다고 한다. 나도 인정 못 받는다는 상처가 과도한 인정욕구를 불러왔던 것 같다. 내가 의사 선생님께 셜록홈스를 빌어서 셜록홈스는 추리의 천재이지만 문학, 철학, 천문학에는 무지했었다고, 사람들은 다 강점이 있으면 약점이 있는데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은 약점만 물고 늘어지며 침소봉대해서 힘들다고 하니깐, 본인이 잘 파악하고 있으면 된다고 하셔서 안심이 됐다. 물론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발전시켜나간다. 거울자아란 말처럼 다른 사람의 공격과 비난, 반응에 일희일비하고 중심이 흔들리고 상처받고 불안했었지만, 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아껴주고 자기 성찰이 잘 되면 좀 더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김석 교수님의 말씀처럼 자아 리셋을 실천하며 나의 현재 삶을 점검하고 문제를 파악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겠다.
그리고 정말 인문학의 가치를 다시 한번 가슴깊이 느꼈다. 인문학은 단순히 시대가 좋다고 하니깐 대세를 따르려고 하기보다는 진정으로 내 삶과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데 의미를 두어야겠다. 여러 예술과 문학 작품들을 통해서 삶을 풍요롭게 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탐색해 나가야겠다. 더 이상 불안에 발목 잡히지 않고 나를 바르게 파악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해나가고자 한다.
TV | 전 국민의 평생학교 EBS
EBS초대석 / 철학으로 자신과 만나기 – 김석(철학과 교수) 2025.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