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저는 마음속에 작은 학교 하나를 그려봅니다. 언젠가 꼭 세우고 싶은 저만의 학교예요. 가수 인순이 씨가 혼혈인으로서 겪은 아픔을 딛고 다문화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했던 것처럼, 저 역시 남들과 조금 다른 기질과 성격으로 학창 시절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했기에, 저와 닮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꿈꾸게 되었어요.
물론 현실을 들여다보면, 부지 선정에서부터 건물 설계, 시설 마련, 운영비 확보까지 하나하나 쉬운 게 없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는 조용한 희망을 품고 있어요.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꿈을 닮아 간다”는 앙드레 지드의 말처럼요.
빨간 머리 앤》의 앤도 마찬가지였죠. 그녀는 상상력이 남다른 아이였어요. 말이 많고 엉뚱하다는 이유로 종종 마릴라 아줌마에게 걱정을 사기도 했지만, 초록 지붕 집에 오기 전 고아원과 가정부 시절의 외로운 삶을 견디게 해 준 것은 바로 그 상상이었어요. 토마스 아저씨 집에서 살던 시절, 책장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케이티 모리스’라는 이름의 친구로 삼으며 외로움을 달랬고, 해먼드 아주머니 댁 근처의 골짜기에서는 메아리에게 ‘비올레타’라는 이름을 붙이며 친구처럼 지냈지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앤은 상상이라는 날개를 통해 마음의 결핍을 채우고, 결국 혼자서도 삶을 버텨낼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을 길러 냈습니다.
저는 모든 어린이들이 이렇게 맘껏 상상하고 꿈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름 사이에 숨어 있는 동물의 얼굴을 상상하고,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 떼를 보며 그들만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그런 자유 말이에요. 상상하는 힘이 자라면, 삶도 훨씬 다채롭고 풍요로워집니다. 앤처럼요. 앤은 수다스럽고 엉뚱했지만, 동시에 삶을 사랑하고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아이였어요.
상상력은 미래의 진짜 힘이라는 말, 저는 그 말이 정말 좋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학교부터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의 네모반듯한, 마치 감옥 같은 학교 건물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숨 쉬는 유기적이고 자유로운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곡선이 흐르고 나무와 흙, 햇살이 깃든 건물, 아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좋은 공간이요.
건축가 유현준 교수도 말했죠. “한국의 학교만큼 변하지 않는 공간도 없다”고요. 상상력이 가득한 공간 속에서 아이들은 마치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구름처럼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들을 펼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한때 가평의 창의천을 따라 산책하면서, 머릿속으로 튤립이 만발한 강변을 그리고, 수십 마리의 오리가 강가를 뛰노는 풍경을 상상하곤 했어요. 프린스에드워드 섬처럼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그런 공간이 된다면, 매일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설레겠어요.
문득 이런 상상을 해보았어요. 만약 제가 군청 공무원이라면, 도시의 공간을 이렇게 따뜻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채워 나갈 수 있을까? 그런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매일매일이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앤처럼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장에서, 그런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낼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 나눠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