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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진한 감수성

by 루비

Cover Image 출처: Freepik


앤이 매튜와 함께 초록 지붕 집으로 처음 오던 날, 그녀는 창밖을 스치는 자연의 풍경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진 길은 ‘기쁨의 하얀 길’, 연못은 ‘반짝이는 호수’, 화분의 제라늄에는 ‘보니’, 벚나무엔 ‘눈의 여왕’… 그녀의 세상은 이름을 통해 사랑받고 존재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자작나무 숲에는 ‘자작나무 길’, 그 너머에는 제비꽃 골짜기, 버드나무 길이 있었지요.


그 모든 건 앤이 말한 “기분 좋은 통증”처럼, 삶의 아름다움을 진하게 느끼는 감수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그런 앤이 참 좋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특히 교육 현실은 어린이들에게 그런 감성을 허락하지 않지요. 지나친 선행 학습과 성적 경쟁은 아이들의 마음을 건조하게 만들고, 풍부한 감성을 키울 기회를 앗아가고 있어요. 그렇게 곰팡이처럼 번진 메마름은 또 다른 메마름을 낳고, 결국 감정이 사라진 사회를 만들어 가죠.


어른들이 만든 잣대 안에서 신음하던 아이들은 결국 그 잣대를 답습하는 어른이 됩니다. 슬픈 악순환입니다.


경기도로 파견 나갔던 어느 해, 저는 6학년 아이들과 수업을 하던 중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결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시원한 바람, 이 자유로운 공기. 아이들이 잠시 공부를 멈추고 그 향기를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싸늘했죠. 제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커녕, ‘이상한 선생님’ 정도로 여기는 듯했어요.


그 순간 저는 제 감성이 너무 앞선 건 아닐까 스스로를 자책하며, 좀 더 이성적인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감성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이성적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도, 건드리면 눈물처럼 터져 나올 감정의 지점은 있다고 믿어요.


사랑하는 자녀에게, 길에서 만난 고양이에게, 피어나는 꽃잎에게, 혹은 아름다운 문장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말이에요.


어른들도 그러하니, 아이들에게도 그 마법 같은 지점을 찾아줄 수만 있다면—
그들의 마음도 말랑말랑해질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저를 이상하게 바라봤던 아이들도 언젠가는, 껍질을 깨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꺼내 보일 수 있을 거라고요.

모두의 마음속엔 가을날 책 속에 몰래 낙엽 한 장 끼워 넣을 감성과 여백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앤은 시험공부에 매달리는 와중에도 밤나무 가지에 움트는 꽃눈, 거리 끝에 피어오르는 안개를 놓치지 않았어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어느 가을날, 수원에 원서 접수하러 간 김에 수원 화성을 둘러보며 가을 햇살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줄타기를 구경하고 행궁 열차에 올라, 정취 가득한 하루를 온전히 누렸죠. 그것은 제게 단순한 여유가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감각을 되찾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오직 시험과 성적에만 인생을 걸지 않기를 바랍니다.

삶은 본래 낭만적이고 찬란한 것, 그리고 감수성이 깃든 순간은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를 아이들이 알게 되었으면 해요. 조바심과 불안도, 스스로를 믿고 단단하게 다져 온 내면의 힘 앞에서는 그리 큰 벽이 아닐 겁니다. 막다른 골목을 만나더라도, 돌아가는 길이 있음을 알고 다시 중심을 잡는 오뚝이 같은 마음.

앤이 그랬고, 저도 그랬듯이, 당신도 그럴 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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