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하루②

by 루비



연우는 은빛 가면을 골랐다. 그러자 그 남자는 검은색 가면을 얼굴에 썼다. 그는 연우의 얼굴에 은빛 가면을 씌워주고는 손을 잡고 어디론가 이끌었다. 그가 데리고 간 곳은 대리석 장식으로 이루어진 어느 호텔의 커다란 문 앞이었다. 그는 초인종을 눌렀고 이윽고 호텔의 집사인 것 같은 사람이 나와 둘을 안내했다.


둘은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 안의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운하의 푸른빛이 스며들어, 마치 물이 호텔 안으로 흘러든 듯 은은히 퍼졌다. 이윽고 그는 가면을 벗었다. 창백한 얼굴, 깊은 눈빛. 연우는 순간 그 시선에 사로잡혔다. 마치 바다의 밑바닥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제 이름은 진호예요.그 외에는 천천히 말해줄게요. 다만, 나를 믿어도 좋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당신을 보고 첫눈에 반했어요. 나와 함께 있어주지 않을래요?”

“네? 저... 그런데 저는 여행 중이라 곧 돌아가야만 해요.”

“그건 염려 말아요. 내가 여행경비는 두둑이 갖고 있으니까...”


진호가 말을 마치자마자 호텔방 안에 클래식이 울려 퍼졌다. 그 음악은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뱃노래. 어딘가 음울하게 느껴지는 것이 연우는 진호의 슬픈 마음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그에겐 말로 다 못할 숨겨진 사연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이 왜 이렇게 아릴까. 연우는 이유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을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묘한 끌림이었다. 왜 잘 모르면서도 이 남자와 함께 있고 싶을까란 생각에 미쳤다.


“출출하죠? 그러고 보니 우리 점심도 먹지 못했네요. 지금 같이 먹어요. 제가 집사에게 이야기해 둘게요.”



그리고 곧이어 근사한 식사가 차려졌다.

테이블 위에는 은빛 촛대 위에서 촛불이 끊어질 듯 타오르고 있었고, 은빛 식기들에 햇살이 부딪혀 빛나고 있었다. 연우는 조심스레 접시 위 붉은 연어 한 점을 떼어 입에 넣었다. 너무 조심스러워서 식탁 위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맛이 없어요?”

“아니요. 지금도 이 상황이 그저 낯설기만 해서.”

“하하. 저도 그래요. 그런데 저는 마치 오래전에 꾼 꿈이 이루어진 기분이에요.”

“꿈이요?”

“네. 제가 꿈에서 깨어나면 곧장 잊어버리곤 하는데. 어느 날 아침엔 눈을 떴는데 너무나 생생한 거예요. 뭔가 기묘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 꿈속에서 어떤 여인과 함께 식사하고 있었죠. 지금 연우 씨처럼. 그게 당신이었나 싶어요.”

“아... 이거 영광으로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꿈이란 거는 단순히 꿈일 뿐이니깐요.”

“하지만 융은 꿈은 단순한 망상이 아니라 집단 무의식이 담겨 있다고 했잖아요. 제 꿈에 나타난 여인은 집단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운명의 그림자였는지 몰라요. 어쩌면 오래전부터 우리가 만날 운명이었을지도 모르죠.”


연우는 진호의 말에 와인잔을 들었다. 은은한 과일 향이 퍼져 연우의 코끝을 자극했다. 연우는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호는 계속해서 연우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보물을 보듯이 바라보았다. 연우는 긴장해서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와인잔을 든 손은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뱃노래는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마치 장면을 끊는 듯 낮고 묵직한 종소리가 문밖에서 울려 퍼졌다. 문이 열리고는 집사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순간 음악도 멈췄다.


“진호님. 큰일 났어요. 지금 영국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네?”

“많이 위독하시다고 합니다.”

“아니 갑자기 왜요?”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한 번 받아보세요.”


진호는 빠르게 전화를 낚아챘다.


“어. 어머니는? 뭐라고?”


그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입술이 달싹였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진호는 손에서 전화를 떨어트렸다. 연우는 식탁 위의 연어를 바라보다가, 이 모든 화려함이 단숨에 무너져내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싸늘한 기운이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포크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https://youtu.be/z_v-F_dPxlQ?si=OoCHhnKzXC-Aop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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