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을 걷다가 문득 이 자리에 밤나무가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린 시절, 남동생과 가을이 되면 밤을 주우러 다녔는데... 밤송이가 보이면 신발 밑창으로 가시 사이를 눌러가면서 밤송이를 벌리고 알밤을 주워가면 엄마가 맛있게 삶아주셨다.
밤나무가 있던 길 앞에는 친구 수진이가 살았고, 그 옆집에는 동갑이지만 한 학년 아래인 정훈이와 정훈이의 여동생 민영이가 살았다. (모두 가명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집에 번갈아가서 함께 게임기를 하거나 부루마블을 하거나 마당에서 사방치기를 하거나 배드민턴을 치거나 공놀이를 하면서 함께 놀았다.
어린 시절에는 몰랐던 것 같다. 어른이 되면, 그것도 어른이 된 지 한참이 지나서 그 시절이 그리워질 것이라는 것을...
윤동주 시인이 나직이 <별 헤는 밤>에서 어린 시절 소녀들의 이름을 불러본 것처럼, 왜 나도 그 시절 이름들이 그리울까... 함께 뛰놀았던 그 아이들은, 어느새 저만치 멀어지고 말았다. 각자의 삶의 길목에서 다른 가치관과 다른 결을 지니며 살아가다 보니...
오늘 아침엔 민영이 아버지가 주신 직접 키운 포도를 먹었다. 어린 시절, 민영이의 할머니 댁에 가면 메주를 쑤어놓은 것이 벽에 걸려있었다. 나는 그게 너무 신기했다. 하지만 민영이 할머니는 너무 무서웠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도 그 아이들한텐 정말 무서운 분이셨다.
그립고 서글프고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한 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추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이 있어서... 만화 <검정 고무신>처럼 아련한 추억 같은...
우리 함께 빨간 고추잠자리를 잡고 산에서 썰매를 타고 눈싸움을 하던 시절은 다시 오진 않지만... 한 때 함께했던 그 순간이 보물처럼 남아 힘든 시절을 지탱하게 해 준다고...
꼭 안아주고 싶다. 그 시절의 이름들 하나하나 모두 다.
https://youtu.be/h8V3bm8ioGM?si=lQd92Ls3Fu3ocLM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