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는 대학교에 입학해서 이런저런 동기들과의 갈등 속에 고통스러워한다. 로맨스 소설과 영화를 좋아하는 연이는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지만, 사실 그러한 행운은 주어지지 않는다. 편의점 알바와 과외를 하고 동아리 활동과 봉사활동을 하며 열심히 살지만 학우들과의 갈등은 점점 심해진다.
연이는 이유를 모른 채, 결국 완전히 고립되고, 심각한 패닉상태에 빠진다. 그런 연이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건 독서와 글쓰기, 피아노 연주, 여행이었으며 연이는 졸업 후, 과거와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한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옛 선후배, 동기들과 다시 연결되고 또 한 번 고통에 빠진다. 그리하여 연이는 상담과 정신과치료를 병행했고 새로운 예술활동에 눈을 뜬다.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 노래 부르기 등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으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생까지 대학교에서 힘든 일을 겪는다. 집안은 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혼란스럽고 부모님도 힘겨워한다. 이런 상황에서 연이는 여행을 갔다 오며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점차 안정되어 간다.
행복과 불운 사이를 자잘하게 진자 운동 하듯이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연이는 어느새 서른다섯이 되었다.
- 6화 -
연이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기 전, 미리 새로 옮기는 학교에 가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즐거울 것만 같았던 새 학교에 도착하자 왠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했다. 완전한 새로운 시작. 학창 시절 친구들은 이미 서울로 떠나고 서울 근교 경기도라는 지리적 위치는 추억의 장소가 아닌 생경한 장소가 되어있었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서울로 신청할 걸 그랬나? 연이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 2월, 3월, 4월이 지나갔다. 조금씩 새 학교에 적응하는 것 같았다. 서울과 가까우니 퇴근 후에 얼마든지 서울로 문화생활을 다닌다는 게 즐거웠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자신은 여태껏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다는 게 시리도록 아파왔다. 그래서 소개팅을 하게 됐지만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연이가 심각하게 아파온 것이.
연이는 소개팅남과 뚝섬에서 데이트를 했지만, 자꾸만 현실과 분간이 안 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카카오스토리에서 친구를 맺은 동학년 교사는 일거수일투족을 따져 묻기 시작했다. 연이는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황당한 발언을 하다가 결국 관계가 끝났다. 연이는 차라리 잘 된 것 같았다. 사실 아무리 조건이 뛰어나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연이의 병은 점점 심각해져 갔다. 연이는 결국 학교에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동료교사의 말들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혼미해졌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근처 2차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지만 결국 의사와 싸우고 3차 병원에 가게 됐다. 그곳에서 한 레지던트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연이를 좁은 방으로 데리고 가더니 면담을 시작했다. 연이는 요새 감정이 잘 안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자 의사는 방금 전에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연이는 그런 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자신도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자신은 점점 감정이 무뎌지고 공허해지고 슬펐는데 눈물을 흘린 건 뭔지 모르겠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게 어렵다고 느꼈다. 다음날도 의사를 만났다. 이번엔 약은 어떠냐고 물었다.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 약은 하루 만에 효과가 나는 약 아닌데라고 의사가 말했다. 연이는 서글퍼졌다. 의사가 자기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플라세보 효과라는 것도 있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조용히 마음속으로 삼켰다.
연이는 진단서를 내고 결국 휴직을 하게 됐다. 거울을 보니 긴 웨이브 머리가 싫어져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싹둑 잘랐다. 그리고 폐인처럼 집안에 처박혀 있었다. 몇 달을 그렇게 잠만 자다가 문득 성당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오피스텔 근처 성당을 갔다. 그러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명동성당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연이는 매주 2~3번 명동성당에 가서 예비신자교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즈음 친구들은 하나둘씩 결혼을 하기 시작했다. 연이는 자신의 인생이 정체됐다는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자신이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 인생이 고꾸라는 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왕따, 직장 괴롭힘, 스토킹, 헛소문, 모욕, 조리돌림 등... 세상의 폭력에 잘게 부서진 자신이 왜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 모든 시련에도 불구하고 왠지 하느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뭔가 커다란 계획이 있는 것 같았다. 명동성당에서 수녀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소중한 건, 하루라는 말씀. 누군가가 그토록 원했던 그 하루를, 연이는 계속해서 눈뜨고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