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는 대학교에 입학해서 이런저런 동기들과의 갈등 속에 고통스러워한다. 로맨스 소설과 영화를 좋아하는 연이는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지만, 사실 그러한 행운은 주어지지 않는다. 편의점 알바와 과외를 하고 동아리 활동과 봉사활동을 하며 열심히 살지만 학우들과의 갈등은 점점 심해진다.
연이는 이유를 모른 채, 결국 완전히 고립되고, 심각한 패닉상태에 빠진다. 그런 연이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건 독서와 글쓰기, 피아노 연주, 여행이었으며 연이는 졸업 후, 과거와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한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옛 선후배, 동기들과 다시 연결되고 또 한 번 고통에 빠진다. 그리하여 연이는 상담과 정신과치료를 병행했고 새로운 예술활동에 눈을 뜬다.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 노래 부르기 등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으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생까지 대학교에서 힘든 일을 겪는다. 집안은 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혼란스럽고 부모님도 힘겨워한다. 이런 상황에서 연이는 여행을 갔다 오며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점차 안정되어 간다.
행복과 불운 사이를 자잘하게 진자 운동 하듯이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연이는 어느새 서른다섯이 되었다.
- 10화 -
그즈음 해서 연이는 경기도로 다시 파견 근무를 가게 됐다. 그곳은 아침에 창문을 열면 새소리가 들리고 집 밖을 나서면 나팔꽃이 피어있는 그런 곳이었다. 트라우마가 심해져 아플 때면, 나비포옹을 하고 산책을 하곤 했다. 주말마다 서울로 나오며 병원을 찾아가게 됐다. 그곳에서 한 의사 선생님을 알게 됐다. 이제 막 시작한 병원으로 아주 젊은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은 자신을 맨 처음 치료해 준 레지던트 선생님과 아는 사이라고 해서 신기했다.
연이는 병원을 다니며 매일 바쁘게 살아갔다. 토요일에 아침에 병원을 들른 후 카페에 가서 화성학 공부를 했다. 그 후에 영어회화를 공부하러 갔다. 다시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갔다. 왔다 갔다 하느라 바쁘고 고단하긴 하지만 즐거웠다. 방학 때는 대학원 공부하느라 또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집에 있는 강아지는 어느새 6살이 되었다. 강아지가 6살이 될 동안 자신이 변한 건 부쩍 성장한 모습뿐이었다. 문득 연이는 무얼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살까 자문해 보았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게 힘겹긴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연이는 문득 자신이 라푼젤이 된 기분이었다. 고립된 성에 살던 자신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려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그 머리카락은 글이고 음악이고 그림이고 공부였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세상과 연결된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연이는 깨달았다. 세상 사람들의 소음은 중요하지 않다고. 자신이 어찌할 수 없다고. 무책임하고 야만적인 그들과 자신은 분명 달랐다. 열심히 살수록 헐뜯고 끌어내리려는 자들과 자신은 달랐다. 집 앞에 핀 나팔꽃처럼 매일 잠들고 아침에 눈뜨며 새로운 하루를 맞는 게 기적이었다. 연이는 언젠가 이 평온이 다시 무너질지 모른다는 것을 미세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연이는 조용히 계속해서 꿈을 꾸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