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드로 공항(완결)

by 루비

지난번에 쓴 히드로 공항 1편에 이어 2편, 3편을 추가해서 짧은 소설을 완성했습니다. 재밌게 감상해 주시고 괜찮다면 좋아요, 댓글 부탁드려요.^^



https://brunch.co.kr/@lizzie0220/2593


-1화-


채원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한국 땅을 떠나 머나먼 런던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손에는 비행기 티켓이 들려있다. 삼삼오오 모여서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 채원은 혼자다. 채원은 피식 웃으며 혹시 우연히 로맨스가 일어나지는 않을지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렴 중요하지 않았다. 채원은 지금 잠시 휴식이 필요했다. 그렇게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첫날이라 새 구두를 신었다. 발이 조금 아프지만, 어차피 비행기 안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건데 어떠냐 싶었다.


13시간을 날아가 밤 10시에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날아와 묵을 곳도 없는 상태였다. 넓은 공항이 마치 망망대해처럼 느껴졌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어떡해야 하나 발을 동동 구르던 채원은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뭔가 길이 보이질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안내 데스크에 물어보니 호텔은 한 박에 200파운드. 채원은 손사래를 저으며 차마 그 가격엔 묵을 수 없다는 것을 단호히 밝혔다. 아직 취업도 안 한 대학생이 혈혈단신으로 여행 온 것만으로도 기적인데 그 많은 돈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어라? 옆에 남자의 손에 저스트고 한국어 책이 쥐어져 있다.

“한국 분이세요?”

“네. 묵을 곳을 찾고 있어요.”

“저도요.”

“여기는 좀 비싼 것 같네요. 앱을 이용해서 한인 민박을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게스트하우스나.” “네. 감사합니다.”

"이름이 뭐예요?"

"채원이에요."

"그럼 좋은 여행 하세요.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겠죠."


그렇게 짧은 몇 마디 나누고 헤어졌다. 그렇게 1시간을 공항을 더 배회했다. 발꿈치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다리를 쩔뚝쩔뚝 걸으며 간신히 한 카페에 들어갔다. 휴대폰이 꺼져서 채원은 공항 카페에 앉아 충전부터 하였다. 결국 남자가 조언해 준 대로 한 한인 민박집과 연락이 닿았다.


1시간 후에, 채원은 공항철도를 타고 유스턴 역으로 가서 내렸다. 한인 민박 스태프들이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길을 찾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저희만 따라오세요.”

한인 민박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이럴 수가.

“아니, 아까 그?”

“아, 채원 씨?”

둘은 그렇게 재회했다.




-2화-


둘은 다음날 함께 아침 식사를 같이 했다. 아침은 민박집에 있는 토스트에 계란 프라이와 딸기잼과 우유를 곁들여 먹었다. 원호는 손놀림이 빨랐다. 그런 원호를 바라보며 채원은 기분이 좋았다. 원호가 채원에게 물었다.

"오늘 어디에 가볼 예정이에요?"

"저는 오늘 런던 브리지와 코톨드 갤러리에 가보려고요. 아, 그러고 보니 저는 이름도 아직 못 여쭤봤네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원호요. 같은 '원'자를 쓰네요. 우연치고 신기하네요. 그림 보는 거 좋아해요?"

"네. 코톨드 갤러리에 가서 반 고흐의 자화상을 꼭 보고 싶어요."

"우리 같이 갈래요? 저도 반 고흐 좋아해요. 혹시 그 자화상이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이에요?"

"네. 맞아요. 고흐를 좋아한다니, 뭔가 잘 통할 것 같은데요. 어떤 점이 좋아요?"

"고흐는 뭐랄까. 좀 버티는 사람 같아요. 무너지려는 마음을 애써 오래 붙잡는... 오랜 시간의 고독과 슬픔이 제 마음을 자극했죠."

"어머, 저도예요. 사실, 저는 줄곧 혼자였어요. 그래서 런던 여행도 혼자 온 거고요."

"이제 같이 다녀요. 어째서 혼자였어요? 나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를 자퇴했어요.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에 갔는데 사람들과 친해지고 쉽지 않네요."

"대학은 원래 그런 곳이죠. 저도 대학교에서 아싸예요. 우리 비슷하네."

채원은 이렇게 이야기하며 옆에 놓인 티슈로 입가를 닦았다. 그런 채원을 원호는 지긋이 바라보았다.

"자 다 먹었으면, 우리 런던 브리지부터 가볼까요? 사실, 나는 오늘 프림로즈 힐도 가보고 싶었어요. 거기도 같이 가요!"

"어? 저돈데... 좋아요."

채원과 원호는 같이 언더그라운드를 타러 갔다. 언더 그라운드는 10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듯 어딘가 고전적인 느낌을 물씬 풍겼다. 작고 아담한 언더그라운드는 한 대를 놓쳐도 금방 다음 열차가 도착했다. 둘은 런던 브리지 역에서 내렸다. 템스강의 일렁이는 탁한 물빛에 건물들이 비췄다.

"와, 여기가 템스강이네요."

"한강만큼 크지는 않네요."

"그래도 런던의 중심부를 흐르는 곳에 오니 뭔가 느낌이 좋아요."

"우리 같이 사진 한 장 찍을까요?"

순간 채원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 아직은 어색해요."

"그럼 각자 찍어요."

"자, 찰칵!"


채원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원호가 찍어주는 사진을 찍었다. 둘은 템스 강변에 기대어 바람을 한껏 느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자꾸만 어깨가 닿았다. 몇 분간의 침묵 후 채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원호 씨는 런던을 여행지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전 그냥 막연히 런던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런던 하면 해리 포터와 셜록 홈스, 그리고 영어의 본토 국가라는 점이 끌렸어요. 채원 씨는요?"

"저도 비슷해요. 전 학창 시절에 버킹엄궁전 왕족들에도 관심이 많았고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정말 좋아했고, 또한 영국의 동화 작가인 베아트릭스 포터도 흥미로워서 애착이 가는 나라예요."

"오, 문학을 좋아하네요. 장르는 다르지만, 우리 뭔가 통하는 게 있는데요?"

"고흐도 그렇고, 같은 장소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정말 비슷한 결이 있나 봐요."




-3화-


채원이 말을 마치자 원호가 채원의 흩날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원호의 숨결과 시원한 템스강의 바람이 채원의 심장을 간질였다.

"아..."

"우리 음악 들을래요? 저한테 에어팟이 있어요."

"좋아요."

"뭐 들을까요?"

"돈 맥클린의 빈센트 어때요? 이따가 자화상 보러 갈 건데..."

"오, 지금 분위기에 딱이네요."

원호는 유튜브 채널에서 빈센트 음악을 재생하고 에어팟 한쪽을 채원에게 건넸다. 어딘가 아련하면서도 슬픈 빈센트 음악이 원호와 채원의 귓속을 타고 온음을 흐른다.

"아까, 말한 줄곧 혼자였다는 말이요. 그거 너무 슬퍼 말아요. 저도 비슷해서 잘 아는데요. 전 사람이 무서워서 자꾸만 숨고 싶고 그래요. 그래서 전 언젠가 저와 비슷한 사람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고 늘 생각했었죠. 그런 사람을 만나길 꿈꾸면서 여행을 다녔고요."

"알아요. 저 슬퍼하지 않아요. 이제 슬픔에 단련됐는걸요. 그리고 뭐, 혼자인 사람만 슬픈가? 누가 그러던데요? 결혼한 사람들도 결국엔 가족들이 먼저 죽으면 다 고독사 한다고. 저 혼자서도 씩씩해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처럼..."

"채원 씨... 그거 알아요? 저 이렇게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거, 정말 오랜만이에요. 아니 처음인가?

"아,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왜인지 원호 씨랑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네요. 안 지 얼마 안 됐지만... 혹시 아까 아침에 이야기한 자퇴 말이에요. 이유가 뭐였어요?"

"아, 그거. 좀 심하게 다쳤어요. 전 제가 싸우면 이길 줄 알았는데 그냥 나가떨어져서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어요."

"어머."

"죽다 살아났죠. 초면에 이런 이야기하기 부끄럽네..."

"아니에요. 그런 말 말아요. 이렇게 담담히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대단하게 느껴지는걸요."

"고마워요. 그럼 저 영국 다음에 프랑스도 여행할 건데 같이 갈래요? 여행 일정이 어떻게 돼요?"

"조금만... 조금만 천천히요... 저도 원호 씨랑 같이 다니고 싶어요. 그런데... 조금만 천천히요."

"아, 내가 성급했어요. 그럼 일단 우리 저 런던 브리지를 건너봅시다. 지금은 혼자가 아니란 거 명심하고요."

"네. 좋아요."

"그럼, 우리 이제 천천히 서로 알아가는 걸로 해요."

"고마워요. 원호 씨."

원호는 채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채원은 잠시 망설이다가 원호의 손을 잡았다. 템스강 위로 바람이 불었다. 채원은 더 이상 발이 아프지 않았다. 원호도 마음이 따스해졌다. 어느새 에어팟 속 빈센트 음악은 끝이 났다. 도로 위 차가 달리는 소리가 채원과 원호를 감쌌다. 원호는 채원의 어깨를 잡고 길 안쪽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원호는 조심스럽게 채원에게 다가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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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4XhFsdTpvVY?si=n9QrsQxM0NpImR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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