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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Jun 21. 2023

쉽게 쓰여진 글

부끄러움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는 제목은 쉽게 쓰여진 시이지만 내용만큼은 많은 고뇌와 성찰이 담긴 시이다. 윤동주의 인생을 담은 <동주> 영화를 보면 윤동주는 매우 섬세하고 마음이 여린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지식인으로서 행동하기보다 시로써 저항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그런 마음이 드러난 대표적인 시가 <서시>일 것이다. 이 시도 마찬가지인데 내가 현대시 중에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가장 좋아하고 윤동주 시인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어딘가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의 한없는 겸손과 투명한 자기 고백적 성찰에 비하면 나는 그에 한참이나 못 미치지만 시대적 아픔과 그를 시로써 저항해 나가는 모습이 은연중에 깊은 공감이 가는 것이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 疊 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네이버 지식백과] 쉽게 씌어진 시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나는 대학때 초등교육과 초등음악교육을 전공해서인지 사실 문학을 깊이 비평하거나 분석할 주제는 못 된다. 책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지루한 것은 딱 질색이고 어렵고 난해한 것, 고루한 것도 싫어한다. 위 시에도 ‘늙은 교수’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여기서 늙은 교수란 단순히 신체적으로 늙은 것을 떠나서 새로울 게 없는 구태의연한 발전 없는 모습의 상징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그러한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나로서는 스스로에게 한없이 엄격하고 겸손한 태도를 일관하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윤동주 시인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런 시대의 귀인이 차디찬 이국의 감옥에서 목숨을 잃은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너무나 가슴 아프다.

     

윤동주 시인뿐만 아니라 이육사의 ‘광야’,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읽으면 가슴이 뭉클하고 감동이 밀려오곤 했다. 어떤 학생에게는 단순히 수능 언어영역을 잘 봐야 하기 때문에 공부해야 하는 지문 중 하나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시인들의 삶의 결정체처럼 다가왔다. 그들의 생애가 내 몸속으로 스며든 기분, 나라를 빼앗긴 가슴 절절한 아픔 등이 내 온몸의 피를 타고 흘렀다.

     

그런데 이런 시를 읽는 기쁨이 대학교의 상대평가와 경쟁적인 학업 분위기, 치열한 임용고사 등 고단한 삶의 전투를 치르면서 곧잘 잊히곤 했다. 짬짬이 시간을 내어 여행을 다니고 시를 읽고 책을 읽으면서도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 더 나아가 생존이 달린 일들에 매달리면서 멀어지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윤동주 시인의 <쉽게 쓰여진 시> 속 한 구절,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라는 시구처럼 나 또한 지금은 비록 지리멸렬한 인생 속 먼지 같은 존재로 살아가지만, 윤동주 시인이 시대의 아픔을 시로써 저항하고 극복했듯, 나는 현대의 경쟁일변도의 사회와 피로, 아픔 속에서 나만의 글로써 저항하고 극복해나가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윤동주 시인을 닮아가고 싶다. 이 글도 어쩌면 너무 쉽게 쓰여진 글일지 모르겠다.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내가 밉지만 꺾이지 말아야지!



윤동주. 시인.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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