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반창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비 Jul 30. 2023

샤덴 프로이데: 남의 불행이나 실패를 보고 느끼는 기쁨

최애의 아이 7화 <입급동>

아이돌의 세계, 요즘 핫한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 심리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기


아카네, 아쿠아, 카나



3)  샤덴 프로이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최애의 아이 7화 <입급동> 마지막 부분에서 아리마 카나는 아쿠아에게 ‘샤덴 프로이데’라는 말을 꺼낸다. 샤덴 프로이데는 남의 불행이나 실패를 보고 느끼는 기쁨으로 자신은 극단 라라라이 소속인 쿠로카와 아카의 천재적 재능에 질투를 느껴 경쟁자로서 실패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 이에 아쿠아는 “쿠로카와 아카네한테 아리마 카나가?”라며 반문을 제기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아리마 카나 역시 천재 아역 배우 출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질투나 시기심에 대해 얼마나 오해를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예전부터 질투심이 심한 사람들로 인해 고생을 해본 나로서는 일찍이 샤덴 프로이데라는 독일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알고 있었다. 더해 살리에리 증후군과 모차르트의 일화, 셰익스피어 비극 <오셀로>에 나오는 ‘초록 눈의 괴물’이라는 질투를 표현하는 말 등을 되새기며 결국은 질투심이 심한 사람은 피하는 방법밖에 상책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셰익스피어 또한 ‘공기처럼 가벼운 하찮은 것들도 질투가 심한 사람들에게는 성서의 증거만큼 강한 확증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질투의 무서움을 경고했기 때문이다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가 바로 그런 질투로 인해 파멸하는 오셀로 장군에 관한 이야기다여기서는 이아고라는 사악한 인물의 음모와 계략으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을 다룬다.


 다행히 <최애의 아이>의 아리마 카나는 그런 사악한 인물로 보이지는 않는다가끔 내뱉는 푸념은 선의의 경쟁자로서 자신의 힘듦을 표현하는 정도로 보인다다만둘이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아쿠아를 사이에 두고도 사랑의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여 조금 위태위태하긴 하다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앞으로 초미의 관심사다순전히 스스로의 매력에 기대어 선의의 경쟁을 펼치면 품위 있는 이야기가 되겠지만만약 비열한 수단을 쓰거나 부도덕한 일을 벌인다면 그야말로 막장 스토리가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전자의 흐름대로 이야기가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가끔 누가 누구를 따돌렸다는 이야기처럼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이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 속 인물들뿐만 아니라 현실의 아이돌 간의 세계 안에서도 파벌과 경쟁질투가 심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그건 꼭 아이돌만의 세계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가 초경쟁사회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실제로 <풍요중독사회>의 김태형 저자는 우리 사회가 너무 풍요롭기에 역설적으로 상대적으로 가지지 못한 것에서 오는 비교의식이 극심한 경쟁심과 불행을 불러온다고 한다이것은 스위스 출신의 작가 알랭드 보통이 그의 저서, <불안>에서 다룬 내용이기도 하다우리 사회는 평등 의식이 만연되어 있는데각각의 조건과 다른 상황으로 인해 실제로는 촘촘히 계급화파편화되어 있다고 말이다


 어떤 사람은 질투심으로 인해 불안을 느끼고 고통받는 사람에게 너를 왜 질투해?”라고 말하기도 한다그에게는 A에게 질투하는 A가 갖고 있는 B가 갖지 못한 어떤 요소가 아니라 A가 갖지 못한 특정한 요소만 바라보며 그럴 리가 없다며 고통받는 당사자의 인격을 훼손한다하지만 우리는 사람마다 주어진 조건도 다르고 특성도 다르다. A가 어떤 요소에서는 B보다 부족할 수 있지만 반대로 어떤 요소에서는 B보다 훨씬 뛰어날 수도 있다그럴 때 질투를 하고 안 하고는 당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질투하는 사람의 개인의 불완전성과 내면의 문제에 있다결국 질투심이 심한 사람이 질투를 극복하는 방법은 비교의식을 버리고 내적으로 충만해지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만약 질투의 대상이 된다면, 그와 거리를 두어야 할 것이다.


 불교 용어에는 샤덴 프로이데의 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는 무디타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남의 불행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행복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남을 부러워할 순 있어도 다른 사람이 실패하기를 바라고 해코지를 하고 괴롭히는 것은 스스로가 매우 초라하고 불안한 상태라는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우리는 진정으로 타인의 행복을 축하하고 축복해 줄 수 있는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고서핑과 인터넷 악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