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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Sep 07. 2023

부산국제영화제 그리고 사랑

웨이브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 3화

 이번 3화는 부산이라서 더 반갑게 느껴졌다. 대구에 살면서 첫 해외여행으로 일본을 갈 때도 부산에서 여객선을 타고 갔고, 여름마다 부산을 자주 갔기 때문이다. 북쪽에만 살다가 남쪽으로 내려와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제2의 수도라고 불리는 부산이 가까이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그전에는 한 번도 부산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갔던 보수동 헌책방 골목, 남포동 국제영화제 거리, 광안대교 등이 나와서 좋았다. 

 그리고 이번 편은 우연한 인연과 사랑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박하경은 문득 이렇게 되뇐다.  

   

간혹 애들에게 한 페이지 소설을 써보라고 할 때가 있다. 예전에는 죄다 사랑 이야기를 써서 왔는데. 딴 것도 좀 써보라고 애원할 정도였는데.
요즘은 아무도 사랑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그냥 연애 이야기도, 어릴 적 첫사랑 이야기도 없다. 그 사이 뭐가 변한 걸까?     


 소설도 만화책도 영화도 로맨스를 좋아했던 나는, 이 대사를 들으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라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드라마에서조차 요즘 시대가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구나 싶어서. 사랑이란 영화에서나마 찾아볼 수 있을 만큼 희귀한 감정이 된 건가라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어쩌면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건, 지극히 낭만적이면서 허황된 망상가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계산적인 시대에.     


 사실, 사랑이란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순수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게 단순한 욕망일지도 모르고, 계산된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걸 어떻게 알아차리고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 박하경이 영화관, 밀면집, 책방에서 연거푸 우연히 만나 동행이 된 이창진은 사람들은 삽질하는 걸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요즘에 사랑 얘기가 없는 거예요.
요즘 사람들이 삽질하는 걸 되게 두려워하잖아요. 연애도 그런 맥락에서 내가 삽질하는 거 아닐까 계속 자길 의심한단 말이에요. 생각해 보면 원래 인생 자체가 삽질이에요.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원래 인생 자체가 삽질이에요’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렇기에 내심 다음날 우연히 부산극장 앞에서 만나자고 한 약속을 지키러 ‘짠’하고 나타날 줄 알았으나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긴급한 일이 생겨서 엇갈렸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사랑이 두려운 나머지 일부러 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에 우연을 거듭해야만 진짜 사랑이라고 믿고 싶다는 듯이. 그건, 그가 서울 망원동의 밀면집에 방문하여 ‘언젠가 만나겠지. 영화는 계속되니까.’라고 방백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내심 그를 다시 만나길 기대했던 박하경이 좀 더 용기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사실 누가 정답이고 누가 틀렸다고 말하긴 힘든 것 같다. 아무리 두렵고 용기가 안 나도 정말 좋아하는 마음이 크다면 저질러버릴 수도 있었을 테니깐. 정말로 삽질할까 봐 두렵고 무언가 잃을까 봐 두려워서 우연과 운명을 기대한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비겁하게 느껴진다. 시작도 하기 전에 그렇게 도망쳐버린다면, 앞으로 함께 하게 될 경우 만나게 될 험난한 인생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그때마다 계산기 두드려가며 나는 손해 보기 싫어라며, 사랑을 말하던 사람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도망칠 것인가?     


 나는 손익계산에만 전전긍긍하다가 시작도 못해보고 도망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바닥을 알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쿨하게 떠날 것 같다. 내가 진짜 생각하는 진짜 용기 있고 내면이 꽉 찬 사람은, 마음이 단단하고 태평양처럼 크고 드넓어서, 어떤 두려움도 실패도 커다랗게 품을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만났을 때, 용기 있게 사랑을 고백하면, 헛삽질이 아니라 금은보화를 캐냈다고 기뻐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번 편에서는 박하경이 그 남자를 우연히 다시 만나더라도 뻥 차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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