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을 가는 길에 나태주 시인과 이해인 시인의 시가 걸려있는 것을 봤다. 별마당 도서관 가는 길이라 그런지 ‘별’을 소재로 한 시였다. 이해인 시인은 내가 중학생 때 좋아했던 시인이고,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라는 시를 알면서 좋아하게 됐다. 그리하여 세바시 대학에 나태주 시인의 강의가 열린다고 해서 한달음에 신청했다. 오늘 첫 수업을 들었는데 한 단어로 요악하자면 ‘감동’ 그 자체다. 한 사람의 인생에 감동할 수 있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강의였다. 나태주 시인이 여든이 다 되어간다고 하는데 나도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에 나이테가 쌓이듯 나태주 시인에게는 인생의 나이테가, 시인의 인생이 담긴 시라는 보물과 함께 차곡차곡 쌓여왔구나 싶었다.
시를 사랑하는 시인과의 문답
나태주 시인께서는 구상 시인의 ‘꽃자리’라는 시를 소개하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앉은자리가 꽃자리니라’라는 시가 인상적이었다. 이 시를 좋아하는 시인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인은 아마도 인생에 순응적이면서도 한 편 낙천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시방석 같을 수 있는 자리를 꽃자리로 생각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와 방황이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아픔이 있었을까란 생각이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유추해 보았다. 인생에 관한 달관의 경지가 구상 시인의 ‘꽃자리’를 좋아하게 만들었을 것만 같았다. 나도 살면서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이제 어떤 시련이나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인생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 나는 나태주 시인이 ‘꽃자리’ 말고도 어떤 시인과 시를 좋아하는지 가장 최고로 여기는 시가 무엇인지 궁금해져서 여쭤봤다.
시인은 내 이름이 동생의 이름과 같다며 반갑게 응답해 줬다. 그는 서정주, 박목월, 김소월, 윤동주, 헤르만 헤세 등의 시를 좋아한다고 했다. 헤르만 헤세의 <흰 구름>도 많이 좋아하는 시라고 했다. 나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헤르만 헤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조금은 알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는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나 <데미안>에서 방황하는 영혼의 아픔에 대해서 그렸었다.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정신적인 아픔을 정원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면서 이겨냈다. 이런 헤르만 헤세의 시를 좋아하는 시인이라면 어딘가 영혼의 결이 비슷할 것만 같았다. 언젠가 나태주 시인이 한 영상에서 스스로를 ‘마이너리티’라고 묘사한 장면을 보았다. 나도 내가 마이너리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에 더 공감이 가고 시인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실제로 나태주 시인의 ‘혼자서’라는 시도 참 좋아한다. 그리고 오늘 그가 좋아하는 시인들을 보면서 내가 좋아했던 시인들이 많이 속해있어서 더 반가웠고 더 많이 좋아졌다. 나태주 시인은 계절마다 여러 시인들의 시집을 꺼내놓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다고 하는데 나도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꽃 시처럼 잘 쓰는 법
출처: https://cafe.naver.com/awesomepeople7/12339
또 다른 학우는 시나 에세이를 꾸준히 쓰고 사람들과 공유하는 법에 대해 질문했다. 뻔한 대답이 떠올랐던 나는 어떤 대답이 주어질지 기대가 됐다. 그리고 두 가지 키워드를 얻고 나서 ‘보물’을 얻은 기분이었다. 시인은 글을 쓴다는 건, ‘하소연’이자 ‘고백’이라고 하였다. 나의 이야기를 호소하는 일이고 자기의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힘든 일들을 글로써 옮기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을 꾸준히 하는 힘은 결국 기록이라고 했다.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안심이 됐다. 시인은 스마트폰의 메모 앱도 적극 활용하라고 말씀하셨다.
한 가지 인사이트를 얻은 건, 글을 쓰는 소재가 꼭 새로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삶 가운데에 누구나 아는 일을 ‘새롭게’, '새로운 시선'으로 쓰는 것이 더 중요했다. 매번 새로운 소재를 찾기보다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고 새로운 관점에서 통찰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이것을 쓸 때 어렵고 현학적이고 복잡하게 쓰기보다 중고등학생들도 이해하기 쉽게 단순하게 쓰는 것이 글쓰기의 지혜였다. 이러한 점이 바로 나태주 시인의 시의 매력일 것이다.
나태주 시인은 그럼에도 겸손하게 자신의 시는 ‘풀꽃’이 가장 유명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시 하나로 지금까지 강의도 하고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고 한다. ‘풀꽃’이라는 시는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의 핵심을 담고 있는 아주 잘 쓴 시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짧고, 심플하고, 쉽고,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에서 ‘너도 그렇다’라는 표현이 얼마나 강렬한지. 이것은 인공지능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다고 한다. 시인은 이 말도 덧붙였다.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지러운가, 그러하므로 복잡한 인생을 나이가 들수록 단순하게 풀어가야 한다며 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정말 절절이 공감 가는 말씀이었다. 정말 현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께서 한 세바시 강연에서 본인은 지금 자신이 쌓아 올린 인생이 마음에 든다며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셨는데 나도 나이가 들수록 그러한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싶다. 후회 없는 인생,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인생, 멋지게 나이 드는 인생 말이다.
인생이 행복해지는 법
그리고 시인의 말씀 중에 인상적인 말씀이 또 있었다. 인생에 관한 지혜로운 현인의 보물 같은 이야기였다. 이것은 예전에 시인의 시집에서 읽었던 것 같은 기시감이 있었는데 결국 찾진 못했다. 그건 바로 행복이란 ‘우리에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물질, 사람, 문화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겐 안락한 집이 있고, 소중한 사람이 있고, 좋아하는 노래 목록도 많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별거 아닌 거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이 작은 목록을 채우지 못해서 불행한 사람들도 많은 걸 보면, 단순한 것 같은 인생 진리도 실천하기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시인이 말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직접 실천으로 보여준 행동 중에 행복해지는 법을 하나 더 발견했다. 그건 바로 자신이 쓴 시를 소중한 사람에게 낭송해 주는 것이었다. 학우 중에는 LA와 시애틀에서 수강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분들을 위해 시인은 ‘멀리서 빈다’라는 시를 낭송해 주었다. 나는 이 순간이 무척 아름답고 낭만적이고 더 나아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쓴 시를 그에 꼭 맞는 사람에게 낭송해 주는 일, 그를 듣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가슴 뭉클할까. 보고 있는 나도 그런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이 수업을 수강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마지막에 1회 차 수업 후기를 적는 설문조사 문자가 왔다. 나는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고 존경하는 나태주 시인의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적었다. 이건 수업이라기보다는 감동적인 인생 예술과도 같았다. 수업이라고 하면 뭔가 강의를 일방적으로 전달받는 느낌이 있는데 90분 동안 이어진 이번 강의는 시인과 학우와의 살아있는 예술과 감정의 교류였다. 시인은 서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옳고 그른 것, 지식만을 강조하는 세상에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감정, 마음에 관심을 두는 것도 참 중요하다고. 나는 나태주 시인이 앞으로 점점 더 많이 좋아질 것 같다. 그리고 나태주 시인이 여러 시인들의 영향을 받아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를 써 내려갔듯 나도 나만의 혼과 인생철학이 담긴 시를 많이 남기고 싶다. 시와 함께여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