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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Jun 08. 2024

무소유와 템플스테이

용문사를 다녀와서 


지난해 웨이브 독점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를 보고 템플스테이를 버킷리스트에 추가했다. 언젠가는 가야지 생각하다가 이번 연휴에 가게 되었다. 가까운 조계사와 용문사 중에서 고민이었는데 조계사는 예약 승인이 나질 않아서 마음을 접고 용문사에 예약했는데 바로 승인이 났다. 결과적으로 용문사로 가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용문산에 위치한 용문사로 가는 길은 사람들로 붐볐고 맑고 쾌청한 날씨에 오랜만에 산속 공기를 맡으니깐 오르막길임에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템플스테이를 처음 가본 나는 무척 설레는 마음으로 갔는데 갔다 온 지금, 또 다음엔 어떤 곳으로 템플스테이를 가볼까 생각하게 될 정도로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한 ‘쉼’의 시간이었다. 처음 가본 나는, 안내문을 봐도 명확히 인지를 못 했는데 사실 내가 갔다 온 템플스테이는 ‘휴식형’이었다. 그래서 스님과의 차담시간, 공양시간과 예불시간 외에는 자유시간이 넉넉히 있었다. 그런데 보니깐 ‘체험형’ 템플스테이도 있었다. 108배를 하거나 염주를 만드는 등의 체험이 추가된 프로그램이었다. 다음에는 체험형으로도 가보고 싶다.     



나는 10년 전에 사 둔 <무소유>를 들고 갔다. 법정 스님이 입적하시고 나서 절판된 책을 부산의 보수동책방골목에 놀러 갔다가 이만 원에 구한 책이었다. 그동안 소유에 집착하며 살아서, 이 책을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면서도 이것저것 옷이며 책이며 가재도구 등 필요한 것들을 사는 순간의 즐거움도 포기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무소유>를 읽고 많이 반성하게 됐다. 템플스테이에서 배정된 방도 <무소유>의 삶과 꼭 일치했다. 단출하게 정말 필요한 것만 있는 삶, 소박하고도 아늑한 공간, 액자 같은 넓은 창으로 푸르른 나무가 보이고 비바람 소리가 들려오는 방,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했다. 그런데 한편 과연,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 지금, 내가 얼마만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한다. 나는 현대  도시 생활을 벗어날 자신이 없는 것 같다. 나에겐 자동차도 필요하고, 여러 옷가지, 책, 문구용품, 식기 도구 등 필요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나를 편리하게 해주는 과학 문명의 발전을 포기하는 것이 힘들다. 비일상과 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지만, 그러기 쉽지 않기에 내가 또다시 템플스테이를 꿈꾸나 보다.      


<무소유>에서 법정 스님이 하신 말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오해’와 ‘이해’에 관한 말씀이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철저히 상대방을 오해하고 있다고 한다.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기에 모두가 타인이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나와 다른 남을 어떻게 속속들이 알 수가 있을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데…. 그런데 법정 스님은 ‘어린 왕자’에게 편지도 써놓으셨다. 그러고 보니 수능 공부하던 시절, <언어영역> 공부하다가 토막 지문으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렇게 원본이 실린 책을 찾아 전문을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법정 스님은 여러 가지 사회문화나 현상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애정 어린 말씀도 놓지 않으셨다. 자비로운 마음을 강조하셨는데, 그와 더불어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마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대목이 있었다. 내 경험으로는 ‘어린 왕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모두가 좋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린 왕자를 매개로 따스한 사람을 많이 만났던 기억이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많이 간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게 같다는 건, 공유할 수 있는 게 많은 것이고, 더 쉽게 친해지고 가까워질 수 있는 것 같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과 사찰 음식
용문사에는 1000년 이상 된 은행나무가 있다


템플스테이를 다녀오고 ‘템플스테이’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했다. 거기서 한 50대 부부가 20대 연애 시절 함께 데이트를 갔던 절에 50대가 되어 다시 함께 템플스테이로 다녀갔다는 피드를 보았다. 30년 만에 옛 연애의 추억이 담긴 장소를 다녀간다니 너무나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템플스테이는 남녀의 애정행각을 금하기 때문에 60대 이상이 아닌 이상 커플이라도 한방에서 묵지 못한다고 한다. 그걸 떠나서 커플이 함께 템플스테이를 다녀오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 불교는 우상숭배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했다. 천주교나 개신교와 달리 불교에서 부처는 신이 아닌 스승의 개념이라고 했다. 나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을 보며 탑돌이도 해보았는데 마음이 절로 경건해졌다. 예불도 드리고 담백하고 맛있는 사찰음식도 먹어보고 스님이 치는 새벽 종소리도 듣고 마음이 절로 정화되는 것 같았다. 혼자 온 것도 너무 좋았지만, 다음에는 남자친구랑도 와보고 싶다. 번뇌를 비우고 깨끗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채우는 시간, 소소하면서도 참 행복할 것 같다. 이번 템플스테이도 맑은 빗소리와 귀여운 고양이 네 마리와 불멍이 함께하는 참 만족스러운 휴식을 보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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