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긁적긁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니 Jul 01. 2023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샌드위치 할 것인가?

징비록

정유재란은 1597년 1월 무렵, 왜군이 14만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재차 침략한 사건을 가리킨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강화의 조건으로 명나라의 황녀를 일본의 후비로 보낼 것을 요구한 것이 전쟁의 발단이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은 후환을 없애기 위해 철수하는 왜군을 섬멸하고자 했고 적선 200척을 불태우고 수많은 왜적을 죽였다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


노량해전은 정유재란, 나아가 임진왜란에 종지부를 찍은 전투인 동시에 이순신의 삶에도 종지부를 찍은 사건으로 기록된다



 "뇌물을 쓰면 죄를 면할 수 있을 터인데" 이 말을 들은 이순신은 크게 화를 내며 조카 이분에게 말했다 "죽으면 죽었지, 어찌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해서 살기를 바라겠느냐?" 다행히 소크라테스와 비슷한 말을 한 이순신이었지만 소크라테스처럼 죽지는 않았다




피를 토하고 죽는 순간까지도 오로지 조선의 미래가 걱정되었던 이순신의 자살설은 진실일까? 적어도 이순신에게 조선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만약 이순신이 전쟁에서 살아 돌아갔다면 그 하늘을 찌르는 인망으로 인해 조선의 왕은 이순신으로 바뀌거나 이순신 때문에 큰 내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진실이 어쨌든 그의 죽음은 나라의 존망을 위한 희생이었고 난세영웅의 탄생이었으며 한 위인의 기적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죽음이 또 있을까? 한 인간의 죽음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렇게 죽을 수 있다면 나 또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순신의 죽은 소식을 들은 진린은 의자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통곡했다 모든 군사가 엎드려 통곡하니 바다가 울릴 정도였다 수많은 백성이 영구를 붙들고 울어 길이 막히고 행렬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지경이었다》



임진왜란의 후반전에서 조선이 승리를 거둔 것은 이순신 장군 덕분이고 전반전은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빠르게 도망간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백성

"나라가 우리를 버리고 떠나면 우리는 누구를 믿고 살라는 말입니까?"




유성룡

"지금 여러 신의 가족이 대부분 그곳에 피해 있는 까닭에 그곳으로 가자는 의견이 많은 듯합니다 신의 늙은 어머니 또한 강원도나 함경도 지방에 머물고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사사로운 정을 생각하면 그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찌 나라의 앞날보다 우선 하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통곡하는 유성룡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결국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한양을 떠났다




서양과 동양의 문화는 크게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혹은 집단주의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통상 일본과 한국은 같은 전체주의 문화로 카테고리화하는 오류를 범한다 사실 일본은 집단주의이고 한국은 관계주의로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런 문화는 그대로 임진왜란에서 드러났다 일본인의 문화에서 왕이나 성주가 성을 버리고 백성을 버리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일본인은 통상 전쟁에서 패배할 때 할복하거나 투항하지 도망가지는 않는다



그에 반해 한국인은 가족을 위해서는 대의를 저버릴 수 있고 할복은 상상하기 힘들다 왜냐면 남은 가족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체성이 국가나 집단이라면 한국인의 정체성은 혈연 지연 같은 관계에서 온다 이런 한국인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던 일본인은 무서운 속도로 침략해 조선의 영토를 점령해 나갔음 에도 불구하고 더 광적인 속도로 도망가는 선조 때문에 지쳐버린 것이다 만약 선조가 잡혔더라면 전쟁은 너무나도 싱겁게 끝났을 것이다 즉 그때 당시 이런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가 전쟁 결과를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한국인의 이런 독특한 관계주의 문화는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윌 스미스가 생방송 도중에 자신 아내의 탈모증을 놀리는 크리스 록을 향해 뺨을 가격한 사건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시 오스카 역사상 가장 추악한 순간이라는 비판부터 시작해 전 세계인들은 윌 스미스를 맹비난을 했고 반대로 크리스 록의 유연함과 평정심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근데 여기서 재밌는 것은 한국인 네티즌들의 반응이었다 "가족 건드리는 건 못 참지", "우리 엄마보고 너네 엄마 대머리냐 머리 민김에 군대나 가라고 해라 뭐 이딴 개그 쳤다 생각하면 못 참지" "턱을 날려야 기절인데 광대를 치셨네 아실만한 분이" 이런 댓글 내용이 대분이었다


자유발언과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관계 뭐가 더 중요할까?




사실 이런 관계주의는 임진왜란에서 승리의 또 다른 요소인 의병들의 게릴라 전투로 이어졌고 지금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한때 단일화가 필요한 산업화시대에서 일본의 집단주의가 미국의 경제대국 왕좌를 위협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다변화하는 정보화시대에서는 한국의 관계주의가 국제무대에서 일본보다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은 외국 현지화 전략에서 일본의 문화를 주입시키려고 하는 반면에 한국은 친해지고 관계를 맺으려고 한 것이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이제는 나라 간의 기술 격차가 줄어드는 만큼 혼자 경쟁하는 시대에서 함께 호흡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가올 인공지능시대에서 한국의 관계주의는 여전히 먹힐까?



《선조가 정주에서 의주에 도착했을 때 명나라의 조정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심지어 우리가 왜적의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왜적이 평양성에서 몇 날 며칠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민심도 차츰 수습되고, 남은 군사들을 재정비하면서 명나라의 구원병을 맞이할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참으로 하늘이 도왔다》




임진왜란의 시작할 무렵 조선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만일 이 사실을 숨긴다면 대의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우리를 모략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다른 방법으로 명나라에 이 사실을 알린다면 우리가 일본과 공모했다는 협의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금도 한국은 표면적으로 나아졌을 뿐 여전히 샌드위치 신세에서 고통받고 있다 임진왜란 때는 중국과 일본 사이였다면 지금은 중국과 미국의 샌드위치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관계주의는 다양한 우리를 말하고 있지만 인공지능시대에서는 다양한 개인이 필요한 시대다 시대가 발전할수록 개인의 역할과 역량은 더 커질 것이다 이것은 개인자산으로도 아타고 있다 세계 갑부 수십 명이 전 세계 절반이상의 재산을 갖고 있다 얼마 전에 흥미로운 기사제목을 봤다 "1인기업이 과연 유니콘이 될 수 있을까?"




《이순신은 아무리 졸병이라 해도 군사에 관한 내용이라면 언제든지 와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했다 그러자 모든 병사가 군사에 정통하게 되었으며,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는 장수들과 의논해 계책을 결정한 까닭에 싸움에서 패하는 일이 없었다》



관계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의 목소리는 희미하거나 공격받기 쉽다 한국이 선진국에서 애매한 위치해 있는 것은 이런 관계주의 문화로 인해 개인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억압하는 것이 크다고 본다 한국도 샌드위치 신세에서 벗어나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리더국가가 되려면 이순신처럼 개인의 중요성과 잠재성을 재정의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다양한 우리보다 좀 더 다양한 개인이 필요하다 다양한 개인이라는 것은 다수에게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을 말한다


기업을 놓고 봤을 때도 그렇다 우리는 이상하고 극단적으로 보이는 창업자들을 더 인내해야 한다 우리는 단순한 점진적 발전을 넘어 회사를 이끌어갈 수 있는 특이한 개인들이 필요하다 그런 개인들이 무에서 유를 창출할 것이고 세상에 이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믿는다



한국의 나이 문화에 대해

중국의 종법제도는 은나라 <기원전 1600~1046년>가 멸망한 뒤인 주나라의 중심적인 생각으로 작용했는데 우리나라에도 나이를 중시하는데 영향을 줬다



즉 한국의 나이 문화는 낡았고 많은 것들을 제한한다 한국에서 통상 나이를 묻는다는 것은 상하우위 같은 관계를 규정하겠다는 말이 된다 즉 프레임에 갇히고 구분한다 하지만 친구는 나이를 초월한다 친구 안에는 부모도, 남녀도, 선후배도 상사부하도 없다 우리는 다양한 복잡한 여러 관계가 아니라 그저 친구만 있으면 된다 우리는 진짜 친구 앞에서 굳이 같은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친구가 많은 환경에서 사람의 잠재성과 창의성이 발휘된다 문화는 그 나라의 정체성이자 국력이다 미래 인공지능 시대에서는 개인이 전체로 파생될 것이다



우리는 관계주의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알 필요가 있다 임진왜란 때 이런 관계주의는 결과론적으로는 승리를 이끌었지만 그 대가 또한 너무나도 처참했다



한양에서 평양, 평양에서 정주까지 선조가 평양을 떠난 뒤로 인심이 험악해져 지나는 곳마다 난민들이 창고의 곡식을 약탈하는 일을 목격하게 되었다



《기근이 극도에 이르니 심지어 사람의 고기를 먹으면서 전혀 괴이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명나라 군이 술을 잔뜩 먹고 가다가 길에 구토하는 것을 보았는데 천백의 굶주린 백성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머리를 땅에 박고 핥아먹었다 그마저도 힘이 미치지 못한 사람들은 밀려나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류 (1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