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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남을 원망하다

어매어매 울어매야

by 틈과경계

<흥글소리>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흥글소리>는 말 그대로 흥얼거리는 소리입니다. 전라도 지역 여성들이 주로 부르는 노래라고 합니다. 노래에는 결혼한 여성들의 신세 한탄이 담겨 있습니다.

어매어매 울어매는

뭣할라고 날났는가

날날적에 아릿바닥 밋국속에다

옥시겉은 쌀밥에다 날났건마는

요내나는 왜이란당가

날키울때 뇦이들먼 놀랜다고

반만들어서 날키웠건마는

내신세냄내팔자가 왜이리된가

우리엄마 뭣할라고도 날낳든가


한국민요대전 전라남도민요해설집

노랫말 속 화자는 친정어머니에게 ‘뭣 하려고 나를 낳는가’라는 묻습니다. 이 물음으로 노래가 시작됩니다. 미역국과 쌀밥을 먹으며 산후조리를 할 만큼 귀한 존재였던 내가 왜 이런 팔자가 되었는가를 묻습니다. 왜 엄마는 나를 낳아서 이렇게 만들었는가를 묻는 화자의 목소리는 지금 노래하는 창자의 목소리기도 합니다.


지금 내가 겪는 고단한 삶은 나를 낳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것이다, 왜 나를 낳아서 이런 곳에 시집보냈는가라는 원망이 노랫말을 통해 전달됩니다. 현실의 고통은 ‘태어남’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친정어머니가 자신을 낳은 그 순간을 부정하고 싶은 화자의 마음을 상상해 봅니다.


다른 <흥글소리>의 노랫말을 보아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노랫말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 탄식의 말들은 단조롭게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말들의 틈새를 들여다보면 차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사건과 상황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노래가 참말이라는 말은 바로 <흥글소리>와 같은 노래를 부르는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듣게 되는 말입니다.


<흥글소리>를 눈여겨보는 이유는 이 노래가 결혼한 여성들이 혼자 혹은 은밀함이 보장되는 공간에 불렀다는 점입니다. 어디서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었다는 점, 폐쇄성이 담보되어야만 하는 절박함과 처연함에 있습니다. 어머니나 할머니가 부른 노래를 그대로 기억하여 부르기도 했지만 노래하는 순간 자신의 삶과 밀착된 말들이 되살아나는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처한 삶의 정황과 노랫말이 겹쳐지면서 노래하는 자가 노랫말 속의 화자에 일치되고 분리되는 현상이 자주 일어나기도 합니다. 하나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가 나타나 겹치는 현상을 시점의 착종이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정서적 일치에 의해 노래 부르는 자의 의식이 노랫말 속의 화자와 하나 되는 현상이 노래를 참말이라고 부르는 이유였다고 생각합니다.


<흥글소리>에 나타나는 감정적 반응이나 변화는 생생합니다. 노래의 선율이나 노랫말을 통해 만나게 되는 상황은 서글픕니다. 스스로를 위로하듯, 읊조리는 이 노래에 관한 연구는 소수 연구자(김혜정, 이정아 등)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감정은 주체가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해 구성하는 내면적인 서사인 동시에 주체가 자기 성찰을 수행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흥글소리>가 담고 있는 감정들은 이 노래를 부르고 전승했던 여성적 자아와 정체성을 알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흥글소리>는 생애담과 같은 자전적인 서사의 인지 과정을 보이기도 합니다. 노랫말은 감정을 표현하는데 주력합니다. 탄식과 원망의 말들을 통해 견디고 버티어 내야 할 삶을 인지합니다.


사는 게 녹록지 않다는 탄식이 저절로 나오는 요즘입니다. 전통사회의 약자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직간접적으로 억울하고 불안한 삶을 사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현대판 <흥글소리>가 다시 나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불안정합니다. 존재의 탄생조차 부정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삶을 그들은 어떻게 살아냈는가를 들여다보는 일이 지금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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