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4세기경 만주와 한반도에는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었습니다. 요동으로 진출하려던 연맹체(고조선)가 연나라에 밀려 압록강에 머물면서 형성하게 된 문화죠. 이 문화는 한족의 철기문화, 다른 하나는 스키타이 계통의 청동기 문화로 이 두 문화가 융합되어 압록강 중류와 청천강 상류를 거쳐 대동강 유역으로 흘러들어와 한반도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철기를 사용하는 것은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따비나 괭이 등 농업용 기구가 철제로 만들어지게 되었고 도끼나 끌, 대패도 철제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농경지 개간과 경작의 확대를 가져왔습니다. 당연히 생산력 증대로 이어졌고요. 철제 주머니칼이나 낫이 수확의 도구로 사용되면서 경작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게 되었답니다.
철기를 소유한 정복자들은 경제적인 잉여물을 독점하였습니다. 정복자들에게 복속되는 다수의 피지배계급이 생겨났고, 사회는 계급과 분업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철기의 사용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게 했던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우세한 상층은 다량의 철제 용구와 무기를 가지고 전시대의 족장적, 제사장적 통치와는 다른 권력을 형성했습니다.
4-6세기 경에 만들어진 고분들에는 생산용구, 무구, 장신구 등의 유물이 나옵니다. 그 종류와 양에 있어 이전 시대와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생산용구나 무구, 장신구를 제작하는 새로운 계급의 전문인들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청동기 문명 하의 한반도의 여러 성읍 국가들은 철기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점차 연맹 왕권 국가(부여, 고구려, 동예, 삼한 등)를 형성해 나갔습니다. 이후 계속 세력을 확장해 나가면서 왕권 중심의 고대 국가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무수한 정복의 역사가 계속되었고 이러한 복속의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한반도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 이 세 나라의 구도 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고조선 사회가 농업 중심의 평화로운 사회였다면 철기문화가 도입된 이후 한반도는 정복과 약탈의 세력이 주도권을 가지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지배 계급들의 삶은 당연히 피폐해지고 불안정해졌습니다. 강한 무력으로 노동력을 지배하는 군사적 통치가 대세를 이루면서 남성의 발언권이 강화되었습니다. 여성이 남성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던 것이죠.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여성들의 사회적 위상은 위축되었지만, 가정 내에서 만큼은 의식주와 출산 및 양육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불안정한 피지배계급의 삶은 국가의 체제가 정비되면서 안정되는 듯하다가도 계속되는 정복사업에 군사력으로 동원되어 나가는 일이 잦게 되었습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부역이나 세금 등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여성은 착출 되어간 남성들의 노동력을 보충하면서 부역과 세금을 담당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평민 여성의 삶은 씨족 중심 사회와는 다른 방향으로 치닫게 되었던 것이죠. 생존을 위해서 자연환경과 투쟁했던 지난날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보다 강한 무기를 가진 이들에게 지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청동기 이후 무력에 의해 예속된 여성은 고대국가라는 체제하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피지배층이자 조세자의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전시대부터 담당해 온 가정 경제의 중추 역할은 물론이었고요. 이러한 삶은 삼국시대를 거쳐 근대화가 이룩하기 전까지도 계속됩니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납세의 방법들이 달라졌을 뿐 그 기본적인 삶의 틀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국가의 성립과 국가의 통치체제의 체계화는 여성에게 벗을 수 없는 억압의 굴레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귀족 혹은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중으로 제한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