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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과경계 Aug 29. 2024

사랑의 노래가 변질된 이유

기록으로 전하는 여성민요(5)

고려 시대 노래라고 추정되는 노래로 <거사련>, <제위보>와 같이 노랫말이 전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안동자청>, <예성강>, <원흥>, <월정화>등은 사연만 전하는 노래고요, <이상곡>, <가시리>, <서경별곡>, <만전춘>, <동동>, <정석가> 등도 <악장가사>와 같은 기록을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역 시 형태로 전하는 <거사련>은 노래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노래입니다. <정읍>나 <선운산>과 같은 모티브를 가진 노래라고 할 수 있죠. 원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거사련  

    

까치는 울타리 옆 꽃가지에서 시끄럽게 울고

갈거미는 침상 머리에서 그물실을 뽑아 내네

내 낭군 돌아오실 날 틀림없이 멀지 않은 것이리라

그의 정신이 이미 사람에게 알려 주었으니까     


이 노래는 남편이 객지에 나갔지만, 까치가 울고 갈거미가 침상머리에서 실을 뽑으니 돌아올 날이 머지않았음을 알 수 있다며 기다림과 그리움에 지친 심정을 달래고 있습니다. <정읍>이나 <선운산>과 같이 집을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여성의 일상과 이로 인해 겪어야만 했던 고통과 비애감을 담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민요집>, <한국구비문학대계>, <한국민요대전>과 같은 자료에 수록된 시집살이 노래가 여성민요의 대표적인 노래로 자리하고 있듯이 당시는 부역을 나간 남성을 기다리는 여성의 노래가 주류를 이루었다고 보이기도 합니다.


기록으로 전해지는 노랫말이 반드시 시대에 유행한 노래를 그대로 전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여성의 정서 가운데 절실하게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했을 가능성, 그리고 그 노래가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역화하는 과정에서, 상층의 노래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연주자나 기록자의 성향에 따라 변형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정읍>이나 <선운산>, <거사련>과 같은 노래는 그 당시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래였다고 보입니다. 전쟁에 동원되거나 부역을 나가는 등 국가 권력에 의해 개인의 삶이 좌우되는 시기이기도 했으니까요.     


<거사련>에 대한 해석은 학자마다 차이를 보입니다. 임동권 선생님은 까치와 거미가 길조를 나타내는 민속적인 대상이라는 점을 말합니다. 조동일 선생님은 이 노래가 <정읍사>와 상통하는 노래이지만 희망적인 민요라고 보았습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정읍사>나 <선운산>과 유사한 정서를 가진 노래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정동화, 성기옥 등).     


다음으로 소개할 노래는 <제위보>입니다.


제위보

    

빨래하는 시냇가 수양버들 곁에서

손을 잡고 마음속 말하던 흰말 탄 사나이

비록 처마 줄줄이 석 달 동안 계속 비가 내려도

손가락 남은 향내를 차마 어찌 씻어 버릴 수 있으리오     


<고려사악지>는 이 노래가 다른 남자에게 수모를 당하고 분개하는 여자의 노래라고도 해석하고 있습니다. 임동권 선생님과 정동화 선생님은 이 노래가 고려 여성들이 널리 불렀던 노래라고 보았습니다. 조동일 선생님은 죄를 지어 노동의 징벌을 받게 된 여자가 외간 남자에게 손마저 잡혀 치욕을 씻을 길이 없다고 한탄한 노래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성기옥 선생님은 이 노래가 <안동자청>과 유사한 정절 모티프가 노래라고 하였습니다. 이 노래를 현역 화한 김억의 시를 읽노라면 원 노래의 의미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향내는 언제나     


김억     


버들가지 느러진 시내까에서

내손잡고 우리님 속삭였고야

오는비야 석달을 내리퍼븐들

참아 이손 씻으랴 향내 질것을     

시내까 버들숲서 손잡고 노든님아

아직도 님의 향내 이손에 남앗나니

장마가 석달이란들  참아 손야 씻으리     


김억 <꽃다발> << 한국현대시사자료집상>>13 시집편, 태학사, 1983, 342면.          


김억의 시는 <제위보>의 노랫말을 옮겨놓은 듯합니다. 1연과 2연 모두 같은 내용의 노래를 반복, 병행하고 있어 그리움의 정조를 한층 강화하고 있습니다. 김억의 재해석처럼 본래의 <제위보>는 우연히 만난 님에 대한 여성그리움이 본래의 정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빨래터에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상황은 노래나 이야기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모티프입니다. 사내에게 손을 잡힌 여자는 손가락에 남은 향내를 씻어 버릴 수가 없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고려는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 비교적 자유로운 시대였습니다.  이 노래를 기록한 자들은 유가적 이념으로 이 노래의 재해석을 했다고 보입니다.     


<거사련>이나 <제위보>은 <고려사악지>나 <증보문헌 비고>을 통해 남아있습니다. 노래가 불린 구연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저는 고려시대의 자유를 상상해 봅니다.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니까요.     


<고려사악지>에 소개된 <안동자청>도 유가적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노랫말로 개사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여자가 몸으로 사람을 섬기다 한번 몸가짐을 실수하면 사람들에게 천시와 미움을 받게 된다는 노래라고 사연이 전하는데, 실의 빨강, 초록, 파랑, 흰색으로 되풀이해 그 사실을 비유하여 깨끗한 처신을 다짐하는 노래라고 합니다. 노랫말을 알 수는 없지만 홍색과 녹색, 청색, 백색을 반복하여 비유한 노래라고 보이는데요, 형식상 후렴구를 가진 노래로 병렬과 반복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안동자청> 역시 정절 모티프로 재탄생된 노래가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사랑하는 님과의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 후대 기록 과정에서 정절의 노래로 정착된 건 아닌지요. 권력자들은 여성을  탐했고, 조선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남성이 신분 상승과 부의 획득을 위해 여성을 버리는 일이 많았다고 하니까요.     


<원흥> 역시 <고려사악지>에 전하는 노랫말이 전하지 않는 노래입니다. 원흥진은 동북 방면에 있는 화령부의 속읍으로 큰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합니다. 읍인이 배로 장사를 하러 나갔다가 돌아오면 그 아내들이 기뻐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하고요. 임동권 선생님은 이 노래를 <고려사악지> 기록 그대로 상선을 타고 나갔다 돌아오는 남편을 맞이하는 아내들의 노래라고 보았습니다. 정동화 선생님도 부녀자가 부른 당대 유행의 노래라고 하였습니다. 성기옥 선생님은 이 노래가 고려 말의 작품으로 정치적인 의미가 곁들여진 노래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원흥>은 <안동자청>과 함께 <세종실록>에 전하는데 궁중에서 연행될 때 함께 연이어 불렸다고 합니다.      


<예성강>은 두 편의 노래가 있는데 <고려사악지>에 전하는 내용은 이러합니다. 옛날 당나라 상인인 하두강이란 자가 있었는데 바둑을 잘 두었답니다. 그가 한번은 예성강에 갔다가 아름다운 부인을  보고는 그녀를 바둑에 걸어서 빼앗으려고 그녀의 남편과 거짓으로 이기지 않고 물건은 갑절을 치러주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이롭다고 생각하고 아내를 걸었는데(참 나쁘죠!), 두강은 단번에 이기어 그녀를 빼앗아 배에 싣고 가버렸습니다. 남은 남편이 회한에 차서 이 노래를 지었다는 겁니다. 세상에 전해지기로는 그 부인이 떠날 때에 몸을 동여매어서 두강이 그녀를 드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 이르자 뱅뱅 돌고 가지 않으므로 점을 쳤더니 이르기를 절부에 감동되었으니 그 여인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파선하리라 하였다고 하여 뱃사람들이 두려워 두강에게 권하여 여성을 돌려보내 주었다는 것이죠 . 남편에게 돌아가게 된 여성이  노래를 지은 것이 후편이라고 합니다.      


정동화 선생님은 아내를 빼앗기는 남편의 노래가 전편이고 정절을 소원하는 여인의 노래가 후편이라고 하면서 이 두 노래는 남녀의 연정을 노래한 노래로 선후창의 가창방식으로 불렸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성기옥 선생님은 11, 12세기에 형성된 노래로 도미의 처와 그 배경설화가 유사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저는 정절의 노래라기보다는 아름다운 여인을 빼앗아 가는 권력에 대한 비판과 남녀의 절절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라고 보고 싶은데 말이죠.      


<월정화>는 진주 기생의 이름을 말합니다. 사록 벼슬을 하던 위제만이 기생에게 미혹되어 부인을 근심과 분노로 죽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에 진주읍 사람들이 이를 슬퍼하여 부인이 살아있을 때 친애하게 해주지 않은 일을 기억해서 위제만의 뻔뻔함을 풍자한 것이라고 합니다. 임동권 선생님은 진주 기생 월정화에게 위제만이 반하자 그 처가 병으로 죽은 기록을 토대로 읍인들이 부인의 사정을 애달프게 여겨 부른 노래라고 했습니다. 정동화 선생님도 당시 특정 고을에서 불린 노래로 보았답니다. 강등학 선생님은 이 노래가 현전 하는 “울도담도 없는 집에~”로 시작하는 <진주낭군노래>라고 하면서 노래의 배경 설화가 현전 하는 노래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이렇게 <고려사악지>에 전하는 한역된 노래 혹은 노래의 사연이 전하는 노래들의 특징은 유교적인 가치관에 입각한 노래라는 점입니다. 여인이 남편을 위해 혹은 연정을 품은 상대를 기다리며 혹은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이거나 이러한 관계로 인해 생겨난 비애를 노래했습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를 관통하는 정서이기도 합니다. 여성 혹은 남성에 대한 그리움 혹은 그 사랑을 지키고자 한 사랑의 노래가 이 시기 불린 대표적인 노래였을 것이며 이는 현재 전하는 노래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전문학사에서 이것을 한의 정서 혹은 한국적 정서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했으니까요.     


<이상곡>, <가시리>, <서경별곡>, <만전춘>, <동동>, <정석가> 같은 고려 속요라 불리는 노랫말을 보면 자신을 버리고 갈지도 모를 님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드러납니다. 현존하는 고려속요는 물론 악곡으로나 가사에서 있어 상당수 손을 본 것이지만요. 민간의 노래가 여흥이나 유흥 혹은 궁중의 노래로 유입하면서 겪었을 변이를 고려하더라도 고려시대 여성의 주된 관심이 무엇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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