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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과경계 Aug 21. 2024

다수가 호응하는 노래가 남는다

기록으로 전하는 여성민요(3)

신라 19대 눌지왕 때 내물왕자가 일본 인질로 가있을 때 박제상이 이를 풀어주기 위해 일본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삼랑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부른 노래도 기록으로 전합니다. <치술령곡>이 바로 그러합니다. 양주동 선생님은 이 노래가 박제상과 그 처의 비한을 국민이 애상한 민요라고 했습니다. 정동화 선생님은 이 노래를 <정읍사>와 같은 노래라고 보았답니다.

    

<목주가>라는 노래도 기록으로 전합니다. 신라의 노래로 알려져 있는데요, 임동권 선생님은 현존하는 계모노래와 이를 연결시켜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동화 선생님은 <사모곡>과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만한 민요라고 했답니다.

      

신라 자비왕 때 백결선생이 지었다는 <아악>은 당시 유행하던 방아타령에 맞추어 거문고를 탔다고 합니다. 이것이 방아타령의 원류라고 볼 수 있는데, <풍요>와 같은 노래와도 연관을 지닐 수 있겠습니다.

     

원화가 친구를 질투하여 술을 먹이고 죽인 사건을 노래한 <원화가>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김유신이 가까이한 천관녀가 김유신을 원망하여 불렀다는 <천관녀>의 노래도 기록으로 남는 중요한 자료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기옥 선생님은 이 노래를 7세기 기녀류의 하층신분의 여성이 창작한 노래라고 했습니다. 당시 여성들이 노래를 자연스럽게 지어 불렀을 사회 문화적인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라고 할 수 있겠죠.

     

회소곡, 아악, 풍요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기능을 알 수 없는 노래입니다. 노동의 현장에서 불린 민요는 아니고 당시에 유행하던 유희적 기능의 노래라고 보입니다. 민간에서 부르던 노래가 상층으로 수용된 예로 연희적 성격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이 시기 노래를 추정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여성의 목소리로 말하는 노랫말이 다양해졌으며 정서를 토로하는 풍성한 노랫말이 풍성해지지 않았을까요.     

      

노동 현장에서 불렸던 논농사, 밭농사, 타작요, 길쌈요 등이 있었을 것이고 기능에 맞는 내용을 비롯하여 남편을 기다리는 노래, 노동의 힘듦을 달래는 노래, 풍년을 기원하는 노래 등이 불렸을 것입니다. 노래의 가창방식은 선후창, 독창, 교환창 등 다양했습니다.

     

노동요를 중심으로 이 시기 노래의 특징을 유추하자면 논농사의 발달로 인한 논농사류의 노동요 그리고 전시대에 이미 형성되어 불렸을 여성들의 노래가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의 예악이 상당한 수준으로 정비되었던 시기였던 만큼 이 무렵 불려진 여성의 노동요 역시 노랫말이 다양해졌을 것입니다. 고구려의 노래라고 전하는 <명주 >는 긴 서사적 줄거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긴 서사적인 스토리를 가진 노랫말이 여성들 사이에서 불리고 전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좌혜경 선생님은 사설 구성 발달 과정에 있어 제2 형식의 노래는 서정성의 표출이 사설의 내용으로 다양화되는 단계의 사설 구성을 지닌다고 하였습니다. 기능과 서정이 복합적으로 표출되는 이 노래에 속하는 것으로  김매기 노래, 바느질 노래, 맷돌 노래, 길쌈 노래 등을 들고 있습니다. 힘이 덜 들고 장시간 작업이 지속되는 소수인원의 노동에서 불려진 이런 노래들은 여성 생활과 아주 밀접했다는 것입니다. 국가를 형성한 시기에 이미 현재 불려지는 김매기 노래라든가 바느질, 길쌈요의 기본적인 노래 형식과 노랫말은 이미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여성의 목소리로 불린 노래는 서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읍사>, <지리산>, <방등산>, <치술령가>라든가 <목주가> 등 대부분의 이 시기 자료들은 서사적인 스토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노동으로부터 생성된 민요는 단순한 외마디 소리가 중첩되면서 단순한 노랫말을 형성하였고 이 단계를 거쳐 노동자의 정서를 토로하는 노랫말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다수의 대중이 공감하는 사건이나 스토리가 길고 단순한 여성들의 소집단의 노동 현장에서 단순한 리듬과 악곡의 형식 속에 노랫말로 불렸습니다. 유능하고 창조적인 창자에 의해 노랫말이 만들어지고 그 노래를 들은 청자는 이를 함께 부르고 전하면서 노래는 점차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했을 것입니다.

     

민요의 대부분의 형식-선후창, 독창, 교환창-은 스스로 소멸하고 다시 생성되는 지속성의 시간을 지녔을 것입니다. 그 생존의 중심에는 노동이라는 기능이 자리하며 이 기능을 중심으로 불려진 노랫말들은 새로이 첨가되어나 파지면서 또 다른 각편은 형성하고 이 과정에서 다수에게 호응받는 노래가 살아남는 과정을 겪었을 것입니다.

      

민요의 성장은 다양화를 부추기게 되어 연예 집단이나 상층의 노래(한역화된 자료나 향가 등)로 수용되어 갔습니다. 그러한 예가 <공무도하가>를 비롯한 백제 노래, 신라 노래입니다. 여성 민요는 실제 생활에 필요한 노동요의 기능을 하면서 정착하고 다양화되어 갔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상층의 노래로 수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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