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전하는 여성민요(1)
민요는 입에서 입으로 전승됩니다. 창자의 기억력과 노래 부르는 맥락과 환경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사라지고 없어진 노래가 많습니다. 특히 여성이 불렀던 노래는 더욱 그러합니다. 기록으로 남은 소수의 노래를 통해 유추하고 상상해 볼 뿐입니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노랫말이 구체적으로 어떠한지 어떤 노랫가락으로 불렸을지 알 수 없습니다. 본래 민요였으나 상층으로 유입되면서 문자로 기록된 자료가 고조선의 <공무도하가>, 백제의 <지리산>, <선운산>, <방등산> 등입니다. 남편을 그리워하는 노래에 속하는 <공무도하가>, <정읍사>(지난 연재에서 노랫말을 소개)를 중심으로 여성민요의 본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가장 오래된 한역가 <공무도하가>는 님을 향한 여인의 가슴 아픈 절규가 담긴 노래입니다. 물론 이 노래는 상층으로 유입되면서 다른 역사적 변곡점을 맞이하지만, 노래의 배경설화라든가 노랫말을 살펴본다면 출발은 여성의 노래 즉 여성민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何
님이여 물 건너지 마오
기어이 님은 물을 건너네
임 떨어져 죽었으니
이를 어찌하려나
<공무도하가>는 고조선 당대에 불려진 민요라고 합니다. 고정옥, 장사운, 임동권, 양재연, 조동일, 서수생 선생님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성기옥 선생님이나 김성기 선생님도 오래된 민요가 한문으로 기록된 자료라고 보고 있습니다. 강등학 선생님은 이 <공무도하가>가 민요의 성립과 확장적 전개의 시기에 불린 노래로 <구지가>나 <해가>와 함께 불렸을 노래라고 추정합니다. 이 노래들이 노래의 계층화 흔적을 보여주는 자료라고도 했습니다. 성기옥 선생님은 이 노래가 고조선 말기에 생성되었고 서정시 형성에 여성화자 취향의 노래가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따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합니다.
배경설화라든가 그것이 전승된 과정 등을 추론해 볼 때 기록 이전의 <공무도하가>는 여성이 부른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나라에 유입된 이후 남성의 기록에 의해 이 노래가 기록되었고 이것이 기악곡으로 2차적인 변화를 가진 자료로 남아있기 때문에 한계를 지니는 것이지요.
<선운산>은 노랫말은 남아있지 않지만 사연이 남아있는 노래입니다. 장사인이 병역에 나아가 돌아오지 않자 아내가 이를 기다리며 부른 노래라고 전하고 있죠. <정읍사>와 유사한 배경을 가진 노래입니다. 임동권 선생님과 정동화 선생님은 이 노래를 백제의 노래라고 하였습니다. 조동일 선생님은 이 노래가 길쌈이나 신세타령에서 들을법한 사연의 노랫말을 담았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성기옥 선생님도 이 노래가 <정읍사>와 같은 모티프를 가진 노래라고 했고 같은 망부모티프를 가진 맥락의 자료로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시기 여성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과 헤어져 있는 남편을 기다리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러한 노래가 당시의 불안정한 사회를 추정하게 해 줍니다. 계속되는 정복 전쟁, 남겨진 이들의 생활고... 여성이 감당해야 했던 현실이었습니다. 정복 전쟁에 동원된 남편, 노역 나간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내는 육아와 가사뿐만 아니라 농사와 직조 등 생계를 유지해 나가야 했습니다. 거기에 세금까지 내야 했으니 그 삶이 얼마나 척박하고 힘겨웠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를 위로해 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여성민요입니다. 아니 여성민요라고 지칭하고 있는 대다수의 노래가 바로 그러합니다. 지치고 힘든 노동 현장에서 홀로 외로움으로 힘든 상황에서 수없이 불렸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