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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과경계 Sep 16. 2024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연대와 공감만으로 가능할까

           

지난 호에 강신주의 <지금 우린 염려사회에 살고 있다>를 소개했다. 2012년에 쓴 글이지만 2024년에도 염려사회에 관한 그의 외침은 유효하다. 노년을 상대로 한 보험광고를 예시로 자본의 유혹이 무섭다, 과연 미래에 대한 염려가 노인에게만 해당될까? 그는 묻는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아니 직장인에게 이르기까지 입시와 취업, 실업, 은퇴 이후의 삶을 염려하는 일은 일상이며 당연하다. 그의 말대로 미래에 대한 염려가 과도할 때 오늘이 부정되는 아이러니를 살고 있다.

     

 내일 일정에 대한 염려가 지나치면 그는 오늘 하루를 제대로 보낼 수가 없다. 애인을 만나 행복을 느낄 수도, 고뇌에 빠진 후배의 하소연을 들을 수도, 길거리에 누워있는 노숙자의 삶에 비통할 수도, 심지어 지금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의 맛을 음미할 여력조차도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통째로 오늘 하루를 내일 일정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일 일정이 끝나면 그는 미래에 대한 염려를 그치게 될까. 그렇지 않다. 내일이 되면 그는 모레를 염려하게 될 것이다. 오늘이 수단이 되고 내일이 목적이 되면, 우리의 현재는 항상 불행할 수밖에 없다.     



과도한 미래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부추기는 권력과 협잡군들. 거기에 레거시미디어도 한몫을 한다. 내일이라는 희망이 지금 여기에 이 순간을 부정하는 삶을 당연하게 만든다는 철학자의 말에 동의한다.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모두 그랬으니까.          


내일을 지나치게 염려하면 할수록, 그만큼 우리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애인, 친구, 후배, 그리고 가난한 이웃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없는 법이다. 당연히 이 상태에서 우리는 그들의 말에 화답할 수도, 그래서 사랑과 우정이란 관계를 형성할 수도 없다. 이처럼 염려는 누군가 함께 있으면서도 그와 공감하고 유대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항상 억압 체제는 다수의 사람들을 깨알처럼 분리시키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체제가 이런 좋은 계기를 간과할 리 만무하다. 체제는 우리보다 더 똑똑하다. 소수가 다수와 전면전을 벌여서는 승리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체제 입장에서 미래를 염려하는 인간의 심리는 너무나 유용한 것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미래만을 신경 쓰면 쓸수록 우리에게는 사랑과 연대의 가능성은 그만큼 사라질 테니까 말이다.     

 

그의 말처럼 염려가 깊을수록 파시즘적 정치가 판을 칠 수 있다. 그 파시즘적 정치는 거대자본과 언제나 한 몸처럼 움직여왔다. 철학자는 이들에 대항하여 공감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억압의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슬로건으로 연대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외친다. 지금 내 옆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현재, 이 순간을  잡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철학자다운 통찰이고 마음을 움직이는 말이다. 파시즘적 정치 체제와 거대자본이라는 공공의 적(?)은 다층적이고 불균질 하게 우리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생존하는 환경 자체가 촘촘히 짜인 이권과 카르텔의 구도에서 한치도 벗어나기가 어렵다. 내일을 염려하지 않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내가 다니는 직장 혹은 학교, 내가 먹고살기 위해 소비해야 하는 유형/무형의 무엇. 촘촘히 짜인 그물망에 이미 내 일상이 포섭되어 있다.     


속이 후련한 철학자의 단순 명쾌한 외침이 반갑다. 그렇지만 당장 지금 내 삶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복잡한 실타래와 같은 거대 자본과 정치 구조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만나서 연대해야 할까? 어떻게 합의하고 어떻게 생각을 모아갈 것인가?

     

2024년 추석을 앞둔 나는 오늘을 염려한다. 오지 않은 미래 때문이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넘쳐나는 오늘이 힘겹다. 이미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 지금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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