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의 기준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비판적 사고는 나와 남의 생각을 가르고 나누는 일에서 출발한다. 나와 다른 이의 생각이 나눠지면서 그 판단 기준이 정당한가, 정당하지 못한가, 판단 기준에 내재된 가치나 의식은 정의로운가, 타당한가를 묻게 된다. 이런 질문에서 비로소 내 판단의 기준은 시작된다. 도덕 손상 사회를 염려하는 한 편의 글을 소개한다.
도덕 손상 사회, 어른이 필요하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경향 2024.02.13 20:09
도덕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존재의 요건이다. 도덕성에 큰 상처를 받게 된 후 심한 고통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때 인간은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 번민하게 된다. 이런 도덕적 상처가 인간을 얼마나 괴롭게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유대인 학살과 베트남 전쟁 이후부터다.
조너선 셰이라는 미국 정신과 의사는 베트남 참전 후 복귀한 병사들 중에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와 유사하지만 다른 고통을 호소하는 일군의 병사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다음 4가지였다. 첫째, 도덕을 위반하는 부당한 명령을 상관으로부터 받았던 경험이 있고, 둘째, 명령이라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해 도덕을 위반하고 스스로를 배신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며, 셋째,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수치심, 분노,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넷째, 그 괴로움으로 인해 자해, 자살시도, 혹은 중독, 도덕적 타락의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조너선 셰이는 이 그룹을 도덕 손상 집단이라고 불렀으며, 그 후 여러 동료 학자들은 도덕 손상 집단을 사회 곳곳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권위적이거나 강압적인 체계가 작동하는 비민주적 조직에서 도덕 손상을 경험하는 일이 많았으며, 특히 군대, 경찰이나 검찰에 더 많고, 병원과 학교 같은 기관들에서도 도덕 손상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여러 병원 현장에서 환자들의 생사를 놓고 부조리한 지시를 따라야 했던 응급실, 중환자실 의사들이 자살한 사건이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며 도덕 손상 현상은 세계적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전쟁 중 시민학살에 참여했다든지, 정권의 명령으로 시민을 고문했다든지, 돈 많은 환자를 위급한 환자보다 먼저 치료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든지, 힘센 학부모 집단 혹은 특권층 자녀에 대한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었다든지, 권세 높은 정치집단의 요구에 의해 조작된 언론이나 방송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던지 하는 일 등은 모두 그 일에 동원된 사람들의 양심과 도덕에 크게 상처를 줘왔다.
도덕 손상의 치명적 부분은 그 자신도 가해자의 일원 혹은 동조자가 되었다는, 자신도 더러워졌다는 정체성의 오염으로 인한 큰 고통이라고 한다. 부당함을 거부하지 못했다는, 용기 없음에 대한 모멸감, 권력 집단에 느낀 굴욕감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도덕 손상 집단의 상당수가 존재가 무너지고 사라지는 경험을 하면서 더 이상 자신이 생존해서는 안 된다는 자해나 높은 자살충동을 호소하게 된다.
도덕 손상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 집단은 신참이거나 젊은이들인 경우가 더 많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젊은 방송제작자나 PD들 그리고 교사들이나 영양사 등의 죽음을 설명하는데, 적어도 그 일부분은 도덕 손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약자를 존중하지 않고, 사회적 차별을 조장하며, 거짓을 서슴지 않는 어른들이 많을수록 젊은이들이 받는 도덕 손상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도덕 손상을 받지 않도록 치유가 되어주는 어른들, 즉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지도자, 평등한 진료를 옹호하는 병원 운영진, 몰지각한 집단의 마녀사냥으로부터 교사를 지켜주는 학교 관리자, 거짓된 편파 방송의 편집을 거부하는 선임 PD들 등이 있어야 젊은이들의 생명뿐 아니라 사회의 도덕이 지켜진다.
제임스 길리건이라는 정신과 의사는 도덕이 아닌 힘과 양심으로, 정직이 아닌 거짓과 조작으로 사회가 운영될 때 수치심을 느끼는 국민이 많아지면서 도덕만 위태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도 위태로워진다고 말했다. 도덕 손상이 만연해지고 있는 위기의 시대, 사회 곳곳에서 반전을 거듭하는 어른들이 도덕적 치유자로 출현하길 기대해 본다.
필자는 도덕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존재의 이유라고 말문을 연다. 조너선 셰이라(정신과 의사)가 베트남 참전 이후 복귀한 병사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와 유사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를 들면서 도덕에 반하는 명령을 수행한 기억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수치심, 분노, 죄책감 등으로 괴로워하는 사람, 자해, 자살시도, 중독, 도덕적 타락 등의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특히 군대, 경찰, 검찰, 병원, 학교 같은 곳에서도 도덕 손상 집단은 존재해 왔다고 말이다. 전쟁 중에 시민학살에 참여했던 사람들, 정권의 명령으로 무고한 이들을 고문한 자들, 위급한 환자보다 먼저 권력자, 돈 많은 자를 치료하라는 지시를 받았던 이들, 특권층 자녀에 대한 무리한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조작된 보도에 동참한 자들 등이 도덕손상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한다.
도덕 손상을 입는 집단이 신참 혹은 청년인 경우가 많다는 점도 놓치지 않는다. 도덕 손상이 치명적인 이유는 명령을 수행한 자가 스스로를 동조자로 인식하면서 정체성의 오염으로 인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부당함을 거부하지 못했다는 모멸감, 굴욕감이 상처가 된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이들은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도덕 손상을 결국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생명을 위태롭게 만든다고 그는 말한다.
과연 도덕이란 무엇인가? 도덕이라 규정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도덕이라 합의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면 도덕 손상은 군인, 경찰, 병원, 학교와 같은 곳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우리는 도덕 손상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 질문의 시작점에서 비판적 사고는 시작된다. 내 목소리는 바로 거기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