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의미부여

-생각의 몸집

by 따정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으켜 세워 다리에 힘을 주고 걷게 한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손에 쥔 평범함을 밀어내며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어 발버둥 쳤다.

가슴이 하는 말을 귀담아듣고 온몸으로 경청했다.

까닭이 무엇일까 자주 생각하는 일이 많았고,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침묵하는 시간은 길어졌다.


질문의 답이 명료 해질 때까지 반복하여 물은 결과 답변이 명료하게 다듬어졌다.

그저 나는 내가 ‘애틋하고 특별했다.’

나를 향한 애틋함이 더 강하게 단련되어 생각의 몸집을 키워낸 것이다.



며칠 전 메일함을 살펴봤다.


‘집필실’ 카테고리에 묵혀둔 10년 전 기록을 발견하고 아찔했다.

날이 선 단어, 독기가 가득한 문장들, 바짝 건조된 글들이 모여 있어 조금 낯설었다.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메일함에는 좋아하는 단어인 ‘성장’ 대신 ‘성공’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도무지 내가 쓴 글이라고 믿기 어려운 구석이 많아 기억을 더듬었다.




2008년 11월, 본격적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기 전

교육을 받았던 아카데미에서 바로 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곳 126기 수료생인 나는 당시 승부욕도 강했고 도통 식지 않는 뜨거운 감자였다.

회사 전화벨이 울리면 경쟁이라도 하듯 수화기를 낚아챘다.

우리는 대표이사가 뒷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데시벨이 높아졌다.

더 크고 정돈된 목소리로 힘껏 외친다.


“성공하십시오~ 00 교육원 000입니다.”


당시 꽤나 유니크한 인사말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뱉어보니 영 좋지 않다.

대뜸 성공하라니, 조금은 둥글고 부드러운 단어인 '행복'이나 '반가움'의 단어를 썼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출근해서 “성공하십시오~” 만 백 번 남짓 말한 숱한 날들이 반복된 탓 일까도 생각해 봤다.

입에 붙어 버린 ‘성공’을 나부터 해야겠다 생각하였고 그렇게 불안을 앞세워 걸어왔다.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에 ‘불안은 인생을 잘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또한,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도 ‘불안은 인간을 마비시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을 발전시키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고 말했다.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등 불안 예찬이 즐비한 시절,

지금보다 더 쩨쩨하게 굴어도 괜찮다고 위로하며 넉넉하지 못한 인심을 자랑했다.



스스로 특별하다 여기며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괴롭힌 지난날,

약간의 성공 강박이 있던 어린 나를 소리 없이 안아주고 싶다.


느슨하게 풀어주는 시간이 낭비라고 생각하며 ‘더!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며 끝까지 쥐어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림도 없는 거짓 바람이다.

이제는 어느 쪽이 더 편안하고 좋은 건지 나는 안다.



비가 온 다음 날 흙냄새 맡으며 걷는 일, 나무로만 빼곡한 산속 풍경을 바라보는 일,

보폭을 맞춰가며 함께 걷거나 서로 주고받는 대화 등,

내가 꿈꾸는 세상에는 똑같이 '사람'이 있고 '대화'가 녹아 있다.



몸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고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다.


거기에서 만나는 사람 이야기, 자연 이야기, 동물 이야기를 하며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인생 모양을 이야기하고 싶다.

다정한 시선으로 공감받고 싶다.


맞닥뜨리는 모든 순간을 애틋하게 의미 부여하며

더 자주 느끼고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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