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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훈 Nov 09. 2020

을씨년스러운 곳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앤트러사이트

뭣이 중헌디~


 마포구 서교동 부근에 자주 출몰하는 필자는 퇴근하고서 커피 한잔하고 귀가하는 게 거의 삶의 일부였던 적이 있었다. 요즘은 하는 일이 많고 시간이 잘 나질 않아 그게 쉽지 않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퇴근 후 괜찮은 곳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런 곳 중 가끔 비가 내리거나, 곧 비가 내릴 듯이 흐린 날에는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앤트러사이트 서교점(이하 앤트러사이트)이다.


ㅣ울창한 묘목들과 풀들 사이로 보이는 앤트러사이트는 어딘가 음산한 분위기가 있다.


 흔히 지인들에게 비에 관해 물어보면 비 내리는 건 싫지만 집에서 빗소리 듣는 건 좋아한다고들 말한다. 필자도 사실 그런 부류인데, 앤트러사이트에서 큰 창을 통해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하노라면, 이미 복선이 잔뜩 깔려있어서 잠시 후 어마무시한 일이 발생할 것만 같은 공포 영화의 음산한 기운이 느껴져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완성된다. 이 느낌이 정말 중독성 있다. 한 번 느껴보시라.


ㅣ카페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우렁찬 그라인더 소리나 에스프레소 머신 소리가 나지 않는 아주 조용했던 바.


 앤트러사이트 서교점에서 제일 놀랬던 건 바 위에 머신 종류가 거의 없다.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조용한 바가 인상적이다. 덕분에 필자는 주문할 때도 괜히 작게 속삭이며 주문하고 직원분도 거의 속삭이듯 작게 응대하는, 그 정도로 조용하다. 이런 고요함도 을씨년스러움에 힘을 보탠다. 그렇다면 커피는 어떻게 그라인딩 할까 호기심이 들기 마련이지만 서랍에서 미리 갈아놓은 원두를 꺼내 사용한다. 그래도 어디선가 원두를 갈긴 하니 다행이군.


ㅣ빵 옆에 살짝 보이는 메뉴판을 보면 핸드드립과 모카포트가 메인이다. 밀크 베이스의 음료도 모카포트를 사용한다.
ㅣ앤트러사이트의 간판과 원두들.


 앤트러사이트에 가는 이유를 길게 길게 둘러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커피가 맛있어서다. 필자는 앤트러사이트의 여러 지점을 가봤지만, 그때 방문했던 곳들은 전부 좋은 기억들로 남아있었다. 최근엔 약속이 있어 어느 카페에 가게 됐는데 커피가 맛있어서 보니 앤트러사이트의 원두를 사용하고 있더랬다. 암튼 각각의 지점마다 풍기는 느낌은 조금씩 다르지만 커피는 일관되게 맛있었다.


ㅣ큰 창문을 통해 보이는 초록초록한 느낌이 흐린 날씨에 얼마나 을씨년스러운지 한 번 경험해보시길.
ㅣ주위를 둘러보면 독서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용한 공간이라 하면 일단 공부를 하거나 책 읽기에 좋은 공간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사람이 많을 시간인 점심시간과 저녁 식사 시간을 피해 방문해보면 생각보다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분들이 눈에 띈다. 거의 스터디카페가 되어버린 것 같은 스타벅스의 그것보다는 적은 수이지만 넓고 고요한 공간을 지적으로 꾸며주는 분들이 그래도 좀 있는 편이다.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것을 즐겨하는 필자는 스타벅스를 비롯하여 그 외 노트북 사용을 허용한 카페에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ㅣ늦은시간까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풍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미 많은 커피인들이 경험해본 앤트러사이트의 커피지만 서교점만의 을씨년스러운 느낌과 함께하는 커피 경험은 명확하면서 특별한 맛이 있다. 요새 날씨가 좋다고 날이 흐려지기만 기다리느라 앤트러사이트 서교점 안가지는 마시고, 날이 좋을 땐 나름대로 햇살 맛집이니 그 나름의 느낌 즐겨보시길 바란다.



※ 글, 사진 :  BW에디터지훈

instagram : @ljhoon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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