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록에게 눈 싸움 지지 말자.
여느 카페를 다녀오면 일단 한 가지 정도는 뚜렷하게 기억되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파란 병 같은 독특한 로고라든지 커피 위에 그린 멋진 그림이라든지 특유의 루프탑 풍경이라든지 그 카페를 대표하는 그만의 특징이 있기 마련인데, 오늘 소개할 공간은 이미 썸네일 사진을 보고 '아, 여기!' 했을, 전시된 순록의 두개골이 인상적인 망원동 비전스트롤이다.
일단 외관에는 비전스트롤임을 알 수 있을 만한 특별한 간판이 없어서 처음 방문하는 뉴비들은 잘 못 찾아올 수 있으니 아빠 몰래 운전석 뒤 수납함에서 전국 지도를 꺼내 챙기도록 하자. 망원동을 걷다가 해외여행 중 꼭 한 번씩은 들어가 봤을 법한 관광품 상점이 생각나는 외관을 만났다면 그곳이 맞으니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손잡이를 슬쩍 밀고 들어가면 굉장히 미국 서부의 느낌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공간이 등장한다. 포틀랜드의 어느 시골 카페 같기도 하다. 아, 물론 필자는 미국에 안 가봤다.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열심히 챙겨본 짬이랄까. 무튼 비전스트롤 내부로 들어가면 엄근진하게 걸려있는 순록의 머리가 아이컨텍을 시도해 왠지 바이킹족이라도 등장할 것 같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상당히 멋진 오너 바리스타 부부 두 분이 환하게 맞아주신다.
이렇게 멋진 오너 바리스타 부부 두 분은 각각 테일러커피와 왓코 등 꽤 핫한 곳에서 오랜 기간 바리스타와 매니저로 일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 바리스타다. 그런 곳이라면 당연히 에스프레소를 마셔보는 게 인지상정! 에스프레소라면 티스푼으로 스윽 저어보기도 하고 컵을 돌려가며 크레마층과 커피층을 적당히 섞으며 홀짝홀짝 맛을 음미해야 하지만 필자는 너무 맛있어서 원샷해버렸다. 나란 놈.. 허허.. 그렇게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버린 에스프레소를 뒤로하고 버터 푸딩과 아메리카노를 추가로 주문했다.
비전스트롤은 오픈이 낮12시다. 필자는 홍대에서 잠시 볼 일이 있어 오전에 들렀다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 매장 오픈과 동시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12시를 조금 넘은 시간임에도 좌석은 거의 차 있었다. 아마 이 버터 푸딩 때문일 것이다. 초콜릿에 듬뿍 담근 빵과 아이스크림 조합이라니. 비주얼만으로도 황홀한 이 초콜릿 빵을 한 입 와앙 베어 물자 페닐에틸아민이 몸속 깊숙이 퍼져갔다. 혈당이 올라가고 혈압이 오르는 느낌이다. 취한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알 수 없는 기분 좋음과 함께 도파민이 폭발해 나를 지배한다. 이 초콜릿에 들어있는 페닐에틸아민은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분비되는 물질로도 잘 알려져 있다는데. 아, 버터 푸딩... 사랑이었다.
자, 다시 정신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자. 보통의 카페엔 잘 있을 것 같지 않은 인테리어 소품들이 특히 눈에 띈다. 서부적인 느낌에 양념을 더하는 이 소품들은 사장님 부부의 집에서 가져온 물품이라고 한다. 괜히 장식되어 있는 순록의 두개골을 보고는 뜨끔 한다. 구석구석 빈틈 없이 비전스트롤의 아이덴티티가 충만한 인테리어 소품이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넓은 창을 통해 따사롭게 비치는 햇살은 덤이다. 사람이 많고 각 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수다 때문에 시끄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왠지 서부적인 느낌의 배경과 잘 묻어나서 백색소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필자는 이날 책을 읽었는데 학창시절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필수품이었던 엠씨스퀘어를 쓴 것 마냥 집중이 잘 되었다.
2019년 늦여름부터 시작된 비전스트롤은 오픈 초기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이 그만의 서부적인 느낌을 만끽하러 들르곤 한다. 망원동만의 바이브에 잘 녹아든 비전스트롤에 방문하여 맛있는 커피와 잠시 정신줄 놓게 만드는 버터 푸딩, 그리고 미국 서부 그 특유의 느낌을 마음껏 즐겨보시길.
※ 글, 사진 : BW에디터지훈
instagram : @ljhoon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