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층 옥상은 무서워요
25층 옥상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주된 느낌은 공포였다. 거실에서 유리창 너머로 볼 때와 달리 옥상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놀이공원 관람차에서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1.1m 높이의 펜스가 있었지만, 세로로 듬성듬성 쇠막대만 설치되어 그 사이로 보이는 모습에 다리가 저릿저릿했다. 어린이용 롤러코스트에서도 공포를 느끼는 나로서는 모종의 조치가 필요했다.
아파트는 동 간의 거리가 가깝다. 앞 동에서 보면 우리 집 옥상에서 고기를 굽고 있는지, 꽃을 가꾸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아니, 마음을 먹지 않아도 고개만 돌리면 우리 집 사정을 TV 생중계처럼 환하게 볼 수도 있다. 나도 불편하지만 보고 싶지 않은 풍경을 봐야만 하는 이웃의 고충도 이해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 집은 제일 높은 25층이라 덜 심각한데, 21층 건물의 최상층 세대를 우리 집에서 보면 민망했다.
펜스를 나무 합판으로 막아 버릴까 생각도 해 보았다. 너무 답답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바람이 통하지 않아 통풍이 중요한 식물 키우기가 걱정되었다. 고민하다가 격자 모양의 라티스를 펜스에 설치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방부목으로 만든 나무 라티스를 고려했었다. 방부목이지만 나무 제품이라 매년 오일 스테인을 칠해주어야 하고, 비용도 플라스틱 제품보다 비쌌다. 게다가 고정하려면 벽에 고정용 방부목을 추가해야 하는데, 아파트 벽에 못질이 필요해서 꺼려졌다. 플라스틱 라티스를 설치하기로 했다. 가로 2.4m, 세로 1.2m의 백색 라티스 여섯 장을 택배로 받았다. 나무색, 검은색도 있었지만, 외벽이 흰색 계열이라 튀지 않도록 백색으로 정했다. 한 장에 3만 원 정도로 가격도 저렴했다.
톱으로 라티스를 잘라 펜스에 설치한 후 케이블 타이로 튼튼히 고정했다. 높이는 기존 펜스보다 약간 높게 했다. 라티스 캡이란 제품으로 재단한 라티스에 테두리를 두르는 것이 바른 방법이지만, 펜스 위로 라티스가 튀어 나온 모습이 좋아 캡을 설치하지 않았다.
라티스를 설치하니, 펜스 가까이에 가도 불안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른 건물에서 우리 집 옥상이 잘 보이지 않아 사생활 보호 측면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여러 최상층 세대들이 우리 집을 보고는 라티스를 공동구매하여 펜스에 설치했다. 어떤 세대는 거실창 펜스에도 라티스를 설치했다. 우리 아파트의 모습을 외부에서 보면 비슷한 모습의 최상층 세대가 많다.
칠 년이 지난 후 다시 생각해도 괜찮은 결정이었다. 만일 나무로 설치했다면 아파트 외벽을 칠할 때 작업용 로프를 설치해야 하는데, 방해되므로 철거 후 재설치해야 한다. 플라스틱 라티스는 케이블 타이로만 고정했으므로 공사가 무척 쉬웠다. 혼자서도 30분 정도 일하면 된다. 약간 약해지기는 했지만 라티스는 아직도 짱짱하다. 앞으로도 십 년은 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점은 일 년에 한 번쯤 케이블 타이가 햇빛에 삭아서 바꿔주어야 한다는 것인데 큰 문제는 아니다.
25층 아파트에서 맞는 바람은 생각보다 세다. 태풍이 불 때는 서 있기조차 힘들다. 바람이 심해 애써 가꾼 식물들이 상하기도 했다. 고민하다가 삼 년 정도 지난 후 라티스와 펜스 사이에 반투명 비닐을 끼우고 고정했다. 심한 바람을 막아주니 오히려 식물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한겨울의 매서운 서북풍을 막아주어 장미 등의 월동에도 유리했다. 비닐 설치 후 펜스가 받는 바람의 압력이 커진다. 라티스가 바람에 떨어질까봐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튼튼해서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이 견딘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에게는 방부목 라티스 또는 원목으로 만든 목제 펜스 설치를 권장한다. 하지만 플라스틱 라티스도 좋은 선택이다. 분양받은 그 상태로 생활한다면 옥상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펜스 근처에는 가지 않을 수 있다. 바닥 데크에 이어 두 번째로 설치한 라티스는 내게 큰 만족을 주었다. 슬기로운 옥상 생활의 필수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