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eki Lee Feb 04. 2022

테라스 하우스에 산다구요?

테라스 아파트를 샀어요

“어디에 사세요?”

‘아! 네, 조그만 테라스가 있는 아파트요.’

“펜트하우스인가요?”


미스킴 라일락이 활짝 피어있는 정원이나 처마 밑에 곶감이 줄줄이 매달린 우리 집 옥상을 사진으로 보여주면, 대개 테라스하우스나 펜트하우스에 사는 줄로 안다. 동경의 눈초리에 약간 우쭐대는 마음도 든다. 펜트하우스는 건물 최상층에 있는 복층 구조물로, 정원이 있고, 럭셔리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값비싼 곳이다. 우리 집은 아무리 둘러봐도 고급스러운 구석을 찾아볼 수 없다. 제대로 된 테라스하우스도 아니다. 톱과 전동 드라이버로 초보가 만든 가구들이 옹색한 33평의 평범한 아파트이다.

브런치 카페

아파트 청약 열기가 식었던 십여 년 전에는 최상층 아파트가 인기 없었다. 단열이 잘되지 않아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는 인식이 강했다. 미분양을 우려한 건설사는 최상층에 다락방을 만들고 거기서 출입할 수 있는 열 평 정도의 옥상을 개인에게 분양하는 차선책을 내놓았다. 다락방과 테라스. 펜트하우스 비슷한 공간이 갖춰지게 되었다.


베이비붐 세대 끝자리에 있는 나도 오십이 넘어가며 귀촌을 꿈꾸었다. 부양가족이 있고 직장에 매인 몸이라 언감생심이었다. 십오 년 전 대전으로 근무지가 바뀌자, 전셋집을 구해 육 년 정도 살았었다. 하루는 임대인이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급히 이사할 집을 구하러 다녀야 했다. 그때 무엇에 홀렸는지 테라스가 있는 아파트에 마음이 꽂혔다. 층간소음에서 자유롭고, 무엇보다도 나의 귀촌 욕구를 잠재울 작은 정원이 있다는 점이 좋았다. 기준층보다 사천 만 원을 더 주고 입주가 육 개월 남은 최상층을 계약했다.


몰래 공사 중인 집에 가보았다. 내부 공사가 한창이라 어수선했지만, 옥상 테라스에서 보는 뷰는 만족스러웠다. 테라스를 꾸밀 생각에 틈나는 대로 인터넷 정보를 검색했다. 잔금을 치르고 아파트 열쇠를 받은 후 본격적으로 테라스 꾸미기를 시작했다. 바닥에 데크를 깔고 펜스에는 라티스를 설치했다. 원목으로 만든 탁자와 화분을 택배로 받아 조립하여 배치했다. 그때 시작된 옥상 정원 생활이 팔 년이 넘었다.

다락방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우리 집과 같은 최상층이 40채 정도 있다. 일부 세대는 수천만 원을 주고 전문 조경업체에 테라스 공사를 맡겼다.  파고라를 설치하거나 바닥에 잔디나 화산석을 깔기도 했다.


나는 거의 혼자 힘으로 우리 집 옥상을 꾸몄던 것 같다. 돈도 없었을뿐더러 오랜만에 마음 쏟을 일이 생겨 즐거웠기 때문이다. 입주 당시 직장 업무 스트레스로 갑상샘 기능 항진증에 걸렸다. 몸무게가 5kg 이상 줄고 하루 내내 피곤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주 힘든 시기였다. 생각해 보니 옥상 생활의 즐거움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것 같다.


입주 첫해에는 거의 매주 바비큐 파티를 했다. 자랑하고 싶어 손님을 부르고 고기를 구웠다. 지금 옥상에서 숯불을 피우는 날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드물다. 고기가 먹고 싶으면 가스버너에 불판을 얹어 굽는다. 귀찮아진 것일까? 하지만 옥상에 머무는 시간은 더 많아졌다. 어닝 아래 벤치에 앉아 멍 때리거나 음악을 듣는다. 꽃과 나무를 가꾸며 식물과 교감을 나눈다. 코로나로 여행이 어려운 지금에도 답답하거나 심심하지 않다.


부작용? 당연히 있다. 원래 집에 붙어 있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주말만 되면 카메라를 들고 예쁘다는 곳을 찾아다녔었다. 주말에 집에 있으면 마음이 답답했다. 하지만 이사 온 후로는 거의 여행을 다니지 않는다. 어딜 가도 집보다 큰 감흥이 없다. 다락방 창가에 앉아 테라스를 바라만 봐도 스트레스가 풀리고 행복하다. 집돌이가 된 것이다.

곶감 말리기(10월)

단지에서도 제일 높은 층이라 펜스 너머로 보면 다른 최상층 세대가 환히 보인다. 아쉽게도 테라스를 제대로 즐기며 사는 집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손님 올 때 고기를 굽거나 빨래 너는 장소로 쓰고 있는 세대가 대부분이다. 입주할 때는 꿈에 부풀었겠지만, 테라스를 관리하는 일이 힘에 부치는가 보다.


팔 년 넘게 옥상 생활하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개인 공간이지만 아파트의 옥상 즉 지붕이라는 제한도 있다. 방수나 방범도 마음에 걸린다. 자기 좋은 대로만 행동하면 다른 세대와 갈등도 생긴다. 아파트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야 한다. 슬기로운 옥상 생활이 필요한 이유이다.


글을 쓰는 이유는 그동안 옥상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을 나누고, 도심에서 지혜롭게 전원생활하는 방법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귀촌하지 않아도, 시골에 세컨드 하우스를 두지 않아도 도시에서 전원을 즐길 수 있다. 스트레스 많은 도시인이 ‘옥상 생활로 삶이 풍족해지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있다. 고기나 구워 먹을 생각으로 테라스가 있는 아파트를 살 이유는 없다. 옥상 생활의 행복도 슬기로운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