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프롤로그
00. 프롤로그.
[죽고싶어서 찾아간 곳]
"어떻게 오셨나요?"
"죽고 싶어서요."
나는 아무 감정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물론 여기가 어딘지 몰라서 온 건 아니었다.
죽고 싶을 때 찾아가야할 곳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난 부산의 끝자락에 있는 태종대라는 곳에서 자랐다. 그곳에는 바다위에 절경을 자랑하는 절벽이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 곳을 '자살바위'라고 불렀다. 경치는 아름답지만 안타깝게도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뛰어내려서 붙은 이름이었다.
그곳에는 자살을 막기 위해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라며 푸근한 어머니와 안겨있는 어린 아들의 모습을 한 석상이 놓여있기도 했다.
가끔씩 거기에서 누군가가 뛰어내렸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죽음과 자살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나 의미에 대해 알지 못했던 터라 무심하게 흘려들었다. 자갈마당 해안가로 이름 모를 여자의 시신이 올라왔다며 마을 사람들이 수군댔을 때도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왜 사람들이 그곳에서 뛰어 내렸는지 알겠달까.
하여튼 찾아가야 할 곳은 자살바위나 한강다리나 어디 건물의 옥상 그런 곳이어야 했던 것 아닐까.
하지만 내가 정작 죽고 싶어 찾아간 곳은 푹신한 소파가 놓인 깔끔한 상담실이었다.
여기에는 날카로운 칼도 없었고 목을 맬 단단한 끈도 없는데 대체 여긴 왜 간걸까.
내가 찾아간 곳은 정신과의원이었다.
죽고 싶으면 죽으면 됐지. 왜 여기에 온 걸까.
죽고 싶었지만 죽을 수 없는 이유는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얘기를 찬찬히 듣더니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어요?"
나는 그 질문에 부끄러워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죽지 않은 이유는 어릴적부터 들어왔던 하나의 이야기 때문이다.
'자살 하면 지옥 가.'
어릴적 크리스마스 때 꼬임에 넘어가 갔던 교회.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알고 봤더니 목사님 아들이어서 따라간 교회.
그 교회에서 하는 말이 '자살하면 지옥 간다;'라고 했기 떄문이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정확히 내가 뭐라 할 수 없는 입장이었으나 난 한 가지는 확실하게 믿었다.
아니, 알았다.
지옥은 있을거라고, 실제로 부글거리는 용광로 속에 집어 던져저 몸이 녹아내리는 그런건 모르겠고.
심리적인 지옥, 영혼의 고통이 게속되는 지옥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지금 그랬으니까. 지금 지옥에 있으니까.
차라리 사후세계가 없어서 신체가 사라지면 마음의 고통도 사라지는 거면 좋다고 느꼈다.
그럼 당장이라도 죽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이것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 있으면 어떡하지? 적어도 그것만은 피해야한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지금까지 버텨왔다.
누군가는 비웃을지 모르는 나의 한낱 이 믿음 때문에, 나는 어쨌거나 자연사 혹은 사고 및 질병으로 인한 사망 (나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한시라도 살아가기 싫었다. 목적과 현재의 욕구가 상충되자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 싶었고 정신과의원을 찾아간 것이다.
의사선생님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있는 이유에 대해서, 즉 죽음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를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선생님은 자살이 잘못된 것이고 죄악스러운 것이며 자기 자신을 죽이는 일이라던지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에요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에요 같은 상투적인 말 대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통을 피하고 싶은 선택이잖아요. 그런데 사실 죽는 건 오늘도 할 수 있지만 내일도 할 수 있는거고. 마지막 선택지잖아요. 그럼 최대한 나중으로 미루어보는건 어때요?'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에요라는 말보다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것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그 선택을 하기전까지는 저와 얘기를 나누어보는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