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솔 Oct 10. 2021

우울증 일기 17. 남자에 대한(2)


상담사는 나에게 질문했다.


“어릴 적 돼지라고 놀림 받은 적이 있다고 했었죠? 그 때 이야기를 해볼까요?”


나는 다 이겨냈다고 생각됐던 일이라 자신있게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때 어떤 상황이었나요?”

“정확히는 기억 안나는데 놀이터에 있을 때 남자 애들이 저를 가지고 놀렸어요.”

“그때의 기분과 감정은 어때요?”

“분해요. 억울하고. 답답하고. 공격받아서 무섭고. 내 편이 없는 것 같아요.”


상담사는 내 상황에 공감해주었다. 그리고 어릴 적 나를 앞에 두고 있는거처럼, 나의 편을 들어주었다. 나는 여섯살짜리 나로 돌아와 있었다. 여섯살짜리는 혼자서 그 남자애에게 둘러 쌓여 놀림을 당해야했다. 아무도 내 편이 되어 주지 않았다.


[그만해!]


항변해도 소용없었다. 아이들의 깔깔거림은 그대로 이어졌다. 무력함을 느꼈다. 나는 내 목소리를 내어 하지말아달라고 외쳤는데 아이들은 내 말은 무시했다. 뭐가 그렇게 즐겁냐는, 그 희롱이 뭐가 재밌냐고. 나는 답답했다. 눈물이 차올랐다. 악을 쓰며 그만하라고 하고 싶었다. 나는 어떻게 도망쳤는지 모르겠고,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놀림을 받고 돌아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엄마… 애들이 놀려. 나보고 돼지라고 놀려.]


나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너무 슬프고 공격받고 아팠다. 나의 울먹거림에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뚱뚱한 것 맞잖아.]


“그때의 기분이 어땠나요?”


엄마와 나 단둘이 있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상담사가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기분이 어땠냐고.


“억울하고, 답답하고. 슬프고. 괴로워요. 무섭고 막막해요.”

“아이들이 놀려서 억울하고 답답했구나. 너는 귀엽고 충분히 사랑스러워. 아이들이 뭘 모르고 그런거야. 엄마가 네 편을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아서 섭섭했겠구나.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많이 힘들었지? “

“네.”

“네가 바란것은 뭐야?”

“아이들이 절 좋아해줬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네 편을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나를 안아줬으면 좋겠어요. 사랑한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여섯살짜리 꼬마는 그렇게 울면서 말했다.

그 아이가 바란 것은 장난감도 맛있는 과자도  예쁜 인형도 아니었다.


친구들의 호의를 받고 싶었고, 엄마의 관심과 애정을 받고 싶었다.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좌절했구나.”


무기력과 좌절감이 몰려왔다. 난 실패했다.


저마다 사람마다 지하실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상담사와 함께 오늘도 지하실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 지하실에는 들어있는 물건들 중에서도 오래된 축에 끼었다. 무의식의 영역을 들여다보지 않는 선에서는 가장 오래된 기억이었다. 나는 그 케케묵은 낡은 먼지가득한 물건을 꺼내 상담사 들여보고 있었다. 꺼내오기 싫었다. 짜증이 났다. 너무 오래 전에 묻어두어서 꺼내기가 복잡했던 것이다. 꺼내오면서 나는 다시금 느껴야만 했다. 그 물건을 만지는 순간 내가 잊었던 감각을 되살아나게 했다.


수치심, 부끄러움, 슬픔, 무력감, 박탈감, 분노한, 미움


여러가지 감정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해야할 것은 그 기억을 정리하는 것이다. 어두운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다. 상담사는그 정리방법을 감정을 들여다봐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감정으로 돌아갔다.

그 감정으로 돌아가면, 나는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하고 분하고 머리가 아팠다. 이성적으로 생각이 되지 않았다.


모든걸 부셔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놀리던 애들에게 욕을 퍼부어 주고 싶었다. 상담사는 욕을 해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육두문자 욕은 하기 싫었다.  애들과 똑같아 지는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주하고 싶었다. 그들의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지기를 바랐다. 각종 저주의 말을 퍼부어주고 싶었고 똑같이  아픔을 당했으면 좋겠다고 바락바락 소리질렀다. 나는 날뛰었다.


상담사는 그 애들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매번 그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상담사는 그들을 대신해서 나에게 말했다.


“미안해. 그때 놀려서 미안해.”


나는 미안해를 듣고 싶었던건가?


“상담사님, 그 말 듣고 제가 생각나는 거 말해도 되나요?”

“네. 해보세요.”

“미안해, 말로 용서가 안돼요.”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세요.”


나는 다시 여섯살짜리 꼬마애로 돌아가 날 놀리던 애들을 향해 말했다. 그 애들은 나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지만 난 용서할 수가 없었다.


“네 한마디가 내 인생 전체를 망가뜨렸어. 너때문에 나는 항상 내가 돼지라고 생각했고 뚱뚱하고 못생기다고 생각했어. 어딜가나 움추러들었고 사람들이 날 싫어한다고 생각했어. 너희들이 날 놀리는 바람에 나는 남자들에게 늘 인정 받고 싶었고. 예쁜 사람들이 늘 부러웠어. 너희들 때문에 내 인생을 허비했어. 매일같이 울었어. 매일같이 상처 받고 괴로웠어. 그런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될 거 같아?”


나는 분노했다. 그들이 미웠다.


몇 번을 그때로 돌아갔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했다.


여전히 난 분노하고 밉고, 울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우울증 일기 16. 남자에 대한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