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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Dec 22. 2021

우울증 일기 31. 그렇게 저주할꺼까진 없었잖아.


나는 나아지고 있다. 확실히 그걸 깨달았다.      

어느날 문득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그렇게 내 삶을 저주하고 싫어했을까? 나는 왜 나의 주변, 환경, 나 자신의 외모, 능력에 대해서 그토록 폄하하고 싫어하고 미워하고 저주했을까. 나는 나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머리털 하나라도 다 저주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왜 그토록 저주했던걸까.      


싫었다. 왜 싫었던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느순간부터 가정환경이 넉넉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객관적으로 못살았다. 내가 고등학생 때는 어머니가 벌어오는 월 70만원에 해당하는 돈으로 세 식구가 살았다. 살면서 유일한 사치는 한 달에 한 번 외식사마 시켜 먹는 치킨이 전부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는 이혼을 선택했다. 아무런 경제력 능력도 없어 전업주부로만 살던 어머니가 갑자기 가장이 됐다. 어머니는 우리 남매를 키우기 위해 일을 찾아다녔다. 전단지를 붙이러 다니기도 했고, 국가에서 마련 해준 일자리인 장애아동 도우미 일을 하기도 했다. 결국 살림은 엄마 혼자서 해냈기 때문에 내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었지만, 난 걱정했다. 나는 불안에 떨었다. 어떻게든 성공해서 잘 살고 싶었다. 그때 내가 한 선택은 공부였다. 가난에서 벗어날 방법이 막연하게 공부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놀기 좋아했던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설 수가 없었다. 자존감이 떨어졌다. 나 자신이 부끄러웠으니까. 나에게 따라붙은 이혼가정과 가난이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부끄럽게 여겼다.      


난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았고 가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중학교때까지 상위권이었던 것이 나의 유일한 위로였다. 성적이 좋아서 나는 나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쌍한 생각이다. 자기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성적이 좋으니까 존재해도 돼” 로 스스로 위안 삼았던 거니까.      


자존감이 낮고 삶에 자신이 없고,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겪은 것은 깊은 우울이었다.      

힘들었다. 힘든 삶이었다. 우울할만 했다. 슬퍼할만 했고 힘들어 할만 했다. 외로워 할만 했다.  


그런데 다 지나간 일이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다. 잘 산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달에 한 번 먹던 치킨은 일주일에 한 번 먹어도 크게 타격이 없게 됐다. 카페도 다니니며 밥한끼 하는 커피도 마시고, 삼각김밥만 먹다가 김밥집에서 파는 금방 둘둘 만 김밥을 먹어도 됐다. 맨날 같은 옷만 입었다가 옷가지수도 늘어났다.  


옛날에 가난하고 못살던 내가 아니다. 이제는 그냥 평범한 소시민 정도. 


내가 우울증을 겪고, 과거의 일을 말하니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힘들었던 일을 잘 버텨냈어."


잘 해왔다고. 잘 버텨냈다고. 그렇게 말했다. 난 현재의 나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고 현재의 나의 업적에 대해 인정해주지도 칭찬 한 번 해주지도 않았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나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다. 내 자신에게. 


이제 그만 저주하고, 삶을 사랑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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