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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솔 Dec 29. 2021

우울증 일기 32. 메리 크리스마스


지금까지의 삶에서 소중한 게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어떨 때가 행복했냐고 물어보면, 나는 아무것도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놓치지 않고 잡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선뜻 아무것도 대답할 게 없었다. 


뭘 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살고 싶어요? 딱히 살고 싶지 않아요. 

갖고 싶은게 있어요? 딱히 없어요. 


갖고 싶은 것도 없었고 이걸 가진다고 한들 내가 행복해지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금방 시들해질 것인 뻔했고, 귀찮고, 나에게 무의미해질 것이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가 잃어버린다고 하더라도 별 감흥이 없었다. 별로 아쉽지 않았다. 


그때에, 너도 그랬다.



무슨 용기였는지 모른다. 6년만에 나는 한때 나를 사랑해주었던 사람에게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목적은 이랬다.


'밥 사줄게.'


그 순전히 그 이유 뿐이었다. 난 그와 헤어진 후 얼마 있지 않아서 그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성격차이 가치관 차이로 인해서 나는 너와 함께 있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나를 진정으로 소중하게 생각해준 건 그였다는 생각이 들자 후회를 했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적어도, 만나면 밥한끼라도 사주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에게 맛있는 밥을 사주는 걸 좋아했다. 많이 받은게 고마워서, 인생에 있어서 어떻게서든 한번 더 만나고 싶었고 맛있는 밥 한 끼 사주는게 내 소원이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숙제처럼 여겨졌다.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만났다. 6년 만에 얼굴을 제대로 보고 마주하고 밥을 먹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기나긴 악몽을 꿨다가, 꿈을 꿨다가 그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변함이 없는 것 같았고 사귀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나만 느끼는 거겠지. 


밥을 먹었고, 대화는 재밌었다. 


그와 헤어지는 순간, 나는 그를 강렬하게 붙잡고 싶었다. 


"그땐 정말 미안해."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미안해보다는 고마워라고 바꿔 말했다. 사과를 하고 다시 그가 곁에 있어준다면 정말 나는 이 우울증에서 벗어날 자신이 생길 것 같았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무언가를 붙잡고 싶다는 강한 마음이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떻게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정확한 것은 넌 그때 내가 가장 아플 때 옆에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을 시절에. 

내가 나를 저주하고 내 삶을 경멸하고 있을 시절에.

너는 그런 나를 좋아해주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받은 사랑을 어떻게 돌려줄지도 모르는 나는 그렇게 너에게 상처를 줬다. 

내가 좀 더 나았다면, 내가 좀 더 건강했더라면 너의 예쁜마음을 감사하게 받아들였을텐데.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것도 잡고 싶은 게 없는 내가, 너를 붙잡고 싶었다.  같이 있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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