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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솔 Mar 03. 2022

우울증 일기 50. 일상



보통 아침 5시면 일어난다. 알람은 7시로 맞춰놓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전에 눈이 떠진다. 오늘도 편하게 잠을 자진 못했다. 그렇다고 잠이 오는 것은 아니어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았다. 잠시 멍하게 있다가 커피 한 잔을 탄다. 그런 다음 책을 꺼내 읽는다. 책은 작법서다. 나는 소설과 시나리오에 관심이 많다. 웹소설을 낼 작정이다. 장르는 로맨스. 


7시가 되면 샤워를 한다. 씻고 나서 머리를 말린다. 겨울이라 푸석해진 피부에 스킨과 로션을 찹찹 발라준다. 7시 50분. 가방을 챙기고 현관을 나선다. 집근처에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이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버스는 오직 한 대 뿐이다. 그것이 이 정류장이 특별하게끔 느껴졌다. 오직 한 대만을 위한 버스 정류장 같았다. 이 버스는 바로 회사 앞으로 날 데려다준다. 집에 갈 때도 이걸 탄다. 버스를 기다릴 때면 건너편에 보이는 우리집을 한번 보기도 하고, 주위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고. 오늘은 뭘할지 생각을 하기도 한다. 기다리던 버스를 타면 나는 냉큼 버스에 올라 내 자리를 찾는다. 내 자리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기사자리 뒤, 두번째 자리다. 그 자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넓직하기도 하고. 버스 안 거울이 잘 보여 내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기 떄문이다. 그냥 나는 내 모습을 자주 확인하려고 한다. 이것은 내가 내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 애써 만들어낸 습관 같은 것이다. 사실 난 거울보기도 싫어하고 사진 찍기도 싫어했고 지금도 자신은 없다. 그런 나를 위해사 나는 억지로 사진을 찍고 사진 속에 나를 확인하는 연습을 했다. 그래서 지금은 퍽 익숙하다. 


그렇게 거울 속에 나를 한 번 봐주고 이어폰을 꺼낸다. 요즘에는 무선 이어폰을 많이 쓰지만 나는 유선이다. 무선은 뭔가 떨어질까봐 불안하다. 그런 불안을 느끼고 싶지 않다. 맨날 보는 창밖 풍경에는 흥미가 없다. 잠이 온다. 몸은 내릴 곳을 반사적으로 기억을 하는지 내려야할 정류장이면 잠에서 깬다. 그렇게 버스에 내려서 회사로 걸어간다. 정류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회사가 있다. 그 점은 좋았다. 


회사에 가 인사를 한다. 커피와 물을 준비한다. 가져온 우울증 약을 뜯는다. 물과 함께 먹는다. 가끔 과장님은 그 약이 무슨 약이냐고 물어보곤 했다. 다른 사람들도 내가 약먹는 모습을 보면 무슨 약을 먹느냐고 물어보기는 하는데 나는 그냥 그때마다 '아, 피부과 약이에요.' 라고 답한다. 심각해보이지도 않고, 가볍게 보이는 질환, 납득할 만한 질환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낸게 피부과였다.


그렇게 약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컴퓨터에 앉는다. 메일함을 정리한다. 영어로 된 메일함에 내가 읽어야할 것들은 읽고 나머지 필요없는 것들은 가차없이 버린다. 3년정도 다녔더니 메일 패턴은 항상 똑같은 것들이라 금방 분류해낸다. 오늘 할일이 있는지 없는지 살핀다. 달력을 자주본다. 오늘은 일이 없다. 웹툰을 보기로 했다. 오늘은 밥만 먹고 놀다가겠군. 그런 생각을 했다. 


11시 55분이 되면 배달되어온 도시락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다. 원래는 밖에 나가서 사먹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도시락  배달시켜 먹는다. 도시락은 항상 차가웠다. 도시락을 다 먹은 다음 팀장님이 주신 카드를 가지고 커피를 사러 나간다. 회사 맞은편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근에 있는 회사 사람들이 나와서 커피를 사들고 갔다. 1500원짜리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사들고 회사로 돌아온다. 커피를 마시면서 유튜브를 보거나 카카오톡을 하면서 보낸다. 


다시 업무시간이다. 졸립다. 잠이 와서 꾸벅꾸벅 존다. 살짝 잠들었다. 잠들었던것을 애써 깨우고나면 혹시 중요한 메일이 와 있는지 살핀다. 오늘은 없다. 오늘은 정말 할 일이 없는 모양이다. 열심히 다른 일도 하다가 이제는 지친다. 그래서 멍하게 그냥 컴퓨터 앞에 있는다. 집에가서 밥을 안먹어야지 했지만 이미 퇴근하기전부터 배가 고프다. 큰일이다. 오늘은 뭘 먹지.


퇴근하면서 저녁 메뉴에 대해 고민한다. 엄마와 같이 살고 있긴 하지만 엄마는 퇴직과 함께 식사 준비일도 은퇴하셨다. 음식하기를 귀찮아하셨다. 집에 먹을 것이 딱히 없다. 그래서 내가 할수 있는 선택지는 1.사먹고 간다. 2. 사들고 간다. 3. 배달시켜 먹는다. 였다. 1은 코로나 때문에 하기 싫다. 2는 사들고 갈 수 있는 메뉴가 한정적이다. 3. 배달비가 너무 많이 든다. 결국 배달시키기로 결정한다. 이러다간 돈이 남아나지를 않겠는데. 그런 생각을 한다. 배달된 음식이 온다. 아이패드로 넷플릭스를 보면서 밥을 먹는다. 먹은 것을 정리하고 난 다음 눕는다. 유튜브 영상이나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약을 먹고 잠이 든다. 


지금 이렇게 죽 적어내려간것이 무엇이냐면...


내가 되찾아야할, 소중한 것이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이 일상이 없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에게 삶은 영업이 중지된 놀이공원이다. 각종 불빛을 뿜으며 신나게 돌아가던 회전목마는 녹이 슨채로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 


다른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걸어가고 생동감있게 움직이는데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그렇지가 않다. 삶은 의미가 없고 오늘 먹는 밥은 돌덩이를 씹는 것 같고, 자연스럽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은 고통스럽다. 일어나라고 소리를 지리는 것만 같은 아침 해는 두려운 존재다. 또 와버렸다. 삶이란 아픔이.


우울증을 치료한다는 것은 커다란 기쁨을 주거나 행복을 느끼는 상태가 되는 일이 아니다. 치료의 목적은 일상을 찾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날때 일어나고, 밥먹을 때 밥먹고 잠잘 때 잠자는 그런 삶을 찾아야 하는게 우우울증의 치료다. 


누구에게는 당연한 삶이, 우울증을 겪는 사람에게는 어렵다. 쉬운 것처럼 느껴지는 삶이 버겁게 느껴진다. 그래서 일상을 무너뜨리고 포기한다. 나는 이제 되찾으려 한다.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무언가를 먹으며 잠자리에 에 드는 일. 꼭 되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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