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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하루'에서 배우는 여유

by 캄스

일주일 남짓 다녀오던 여행과는 확연히 달랐다.
3주 동안 머문 하와이의 삶은, 이전의 여행 방식과는 전혀 다른 결을 띠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늘 무언가를 ‘채워 넣는’ 식이었다.
유명한 관광지를 빠짐없이 돌아봐야 한다는 조급함,
하루를 빽빽하게 소화해 내는 것이 여행의 목표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어디를 꼭 가야 한다는 압박도 사라지고,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는 느슨한 여유가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여유는 오히려 하루를 더 단단하고 충만하게 만들어 주었다.


빅아일랜드 어느 날,
우리는 특별한 계획도, 정해둔 동선도 없이
그저 바다를 보러 아침 일찍 해변으로 나섰다.


아이들과 남편은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다.
첫째는 오리발을 끼고 힘차게 헤엄쳤고,
둘째는 아빠 손을 꼭 잡고 물장난에 푹 빠졌다.


나는 그 옆, 모래사장 위 비치 체어에 앉아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적당했고,
멀리 보이는 수평선은 눈부시게 선명했다.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의 몸짓,
잔잔히 밀려드는 파도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도
그날따라 전부 고요하게 들려왔다.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바다의 색감,
몸을 쓰며 노는 사람들의 에너지,
그리고 그 순간의 평화로움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여행이 아니라, ‘쉼’이 필요했음을.


지금까지는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어디에도 가지 않고, 그저 바다 앞에 머물렀을 뿐인데
가장 깊은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보기엔 의미 없는 하루였을지 모르지만,
그 느슨한 하루 속에서
나는 ‘나’로, 또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나로
조용히 돌아갈 수 있었다.


하루를 빽빽하게 채우는 것보다,
가끔은 느슨하게 풀어두는 시간이
훨씬 더 값지고 깊을 수 있음을,
하와이에서 배웠다.



다음 편 예고: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스며든 하루의 균형>

느슨한 하루가 남긴 선물, 그 균형의 순간을 이어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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