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물든 노을 아래, 나는 오랜만에 내 이름을 불러보았다.
하와이의 어느 저녁,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혼자 숙소에 남겨진 고요한 30분.
불 꺼진 방 안, 시트에 등을 기대고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는 여전히 여자였구나.”
아이를 낳고, 키우며 하루하루를 아이 중심으로 살다 보니
‘엄마’라는 호칭 외에 나의 이름은 점점 희미해졌다.
‘임지윤’이라는 이름.
그건 청도의 시골 마을에서 자라며
남들과는 다른 삶을 꿈꾸던 소녀였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홍익대 금속디자인과를 목표로
입시 미술을 준비했고,
대학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하며 열정적인 시간을 보냈다.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고 싶어
스스로 반장을 맡고, 과대를 자처하며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일부러 찾아 했다.
그렇게 단련해 가던 20대,
친구들은 내게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카면서~”
뭐든 “이카면서 하면 되지!” 하고 웃던 나에게
또 하나의 별명이 따라왔다.
바로 ‘캄스’.
단순한 별명이 아니었다.
‘이렇게 살고 싶다’는 내 바람,
‘이렇게 되고 싶다’는 나의 모습이 담긴 이름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이름으로 다시 살아가고 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이를 낳고 나서의 나는
립스틱보다 아이의 보습 크림이 먼저였고,
거울보다는 아이 옷매무새를 더 많이 들여다봤다.
좋아하던 책 대신 그림책을 넘기며 하루를 마무리했고,
사람들 속에서 불리던 내 이름은
점점 ‘엄마’로 바뀌어 갔다.
그러다 하와이의 그날 저녁,
창밖으로 석양빛이 들어오는 방 안에서
나는 오랜만에 ‘지윤’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아무도 부르지 않는 시간에
나는 스스로 나를 불러보았다.
“지윤아, 너 괜찮아?”
“지윤아, 지금 어떤 마음이야?”
그 30분은 짧았지만
내가 얼마나 많이 참아왔는지,
얼마나 조용히 눌러왔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여전히 여자였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거울 앞에 자주 서지 않아도,
여전히 꿈꾸고 설레는 여자였다.
하와이의 그 저녁은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나 자신을 다시 깨워냈다.
대학 시절 친구들이 불러주던 별명처럼,
나는 다시,
조용하고 따뜻하게 ‘나’로 살아가고 싶어졌다.
나는 여전히 엄마이고 아내이지만,
그 모든 역할 이전에
나는 ‘지윤’이라는 여자였다.
그날 이후, 나는 다짐했다.
엄마이면서도 나로 숨 쉬는 삶을 살겠다고.
하와이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내 삶의 속도를 바꾸는,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여자였다.
다음 편 예고:
<아이와 함께, 나와도 함께>
엄마로서의 시간과, 나 자신으로서의 시간을 동시에 안아낸 하루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