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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 작가 Feb 02. 2021

[서평] 벌거숭이들

독서중독자의 책 이야기

▣ 솔직하지 못한 이들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

◈ 너와 나의 거리, 너와 우리의 거리 -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알아왔을까?

가끔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너는 그를 또는 그녀를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가족에 대해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내가 그 사람을 생각보다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어느 날 어머니가 색소폰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동생이 춤을 배우고 있었을 때, 그리고 사랑하던 연인이 알고보니 바람을 피우고 있었을 때, 우리는 그동안 알고 있던 그들의 모든 이야기들이 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소설 『벌거숭이들』은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는 행복에 대한 기준과 또 하나는 나와 타인의 거리에 대해서. 소설 속의 인물들은 잘 지내고 있는 듯 하지만 공허함을 느끼고 있다. 그 공허함은 채울 수가 없다. 어디에서 부터 시작된 공허함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자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드리려고 한다. 그러나 문득 떠오르는 의문점. 나는 과연 행복한가?

유키는 평생 동안 모모와 요우에 대해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모모는 사바사키를 사랑하지만 그에게서 온전한 사랑을 받을 수가 없다. 히비키는 어머니가 죽은 날 어머니에게 새로운 애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코토는 아버지가 갑자기 나간 것에 대해 야마구치의 아내는 남편이 갑자기 살아온 삶을 버렸다는 사실에 의아해한다. 히비키는 미쿠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쿠 역시 히비키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거리는 멀지 않다. 그러나 하나 씩 껍질이 벗겨지면 어느샌가 거리는 멀어져 있다. 타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어느샌가 타인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그것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나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보게 되는 순간 모두가 벌거숭이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동안 믿어왔던 것들이 낯설게 되면서 서로에 대한 거리가 멀어진다.

에쿠니 가오리는 단순히 고립과 외로움을 그려내고 있지는 않다. 작품 속 모든 인물들이 짧게라도 자신의 본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벌거숭이가 된 자신을 보며 이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점을 던지기도 하고 내 삶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모가 중심인물이 되어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따로 없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주인공들이다. 각자 자신의 삶을 힘차게 헤쳐나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벌거숭이가 되었을 때 온전히 나를 볼 수 있다고 보자. 어느 날 목욕을 하기 위해 욕실에서 알몸인 나를 마주 했을 때 우리는 감탄 보다는 축 늘어진 뱃살을 보게 된다. 알몸이 예쁜 사람은 드물다. 단순히 몸매가 좋고 탄력있는 피부를 가진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알몸을 보는 순간 나는 그동안 내가 외면했던 나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나의 외로움까지도.

 

◈ 행복의 기준은 이토록 다른데 우리가 외로운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행복과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진짜 주제일지도 모른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있다. 기대고 있는 대상이 사람일 수도 있고 자신이 처한 환경일 수도 있다. 모모의 어머니 유카는 여자로서 행복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남편에게 마돈나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모에게 행복은 명확하지 않다. 이사와와 헤어지고 사바사키와 아슬한 연애를 하는 것은 행복의 기준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야마구치의 행복의 기준과 히비키의 행복의 기준도 서로가 다르다. 그러나 가끔 그 행복의 기준이 우리를 외롭게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품 속에서 재미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미쿠이다. 아직 초등학생인 미쿠는 엄마인 히비키를 싫어한다. 뚱뚱하고 관리하지 못하고 가정에 얽매여 사는 엄마에게 불만이다. 반대로 치과의사에 예쁘고 능력있는 모모를 존경한다. 모모를 보면 "그 남자와 결혼할거야?" 라고 묻는 것도 미쿠의 행복에 대한 기준이 엄마 히비카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엄마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인생이 엄마의 인생처럼 되어버리는 것은 싫다. 적어도 모모처럼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모모는 지금의 삶이 행복한지는 의문이다. 사바사키를 사랑하지만 사바사키를 온전히 내 남자로 만들 수 없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서로 닮아 있는 것은 행복에 대한 기준이 지금 이 순간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바사키는 행복의 기준을 정해놓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정해놓지 않는다. 마음이 끌리면 그 곳으로 직진하다. 그러나 사바사키는 히비키를 통해 행복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나 오해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사바사키가 그렇게 깨달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단지 사바사키의 눈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이 된다. 사바사키는 히비키의 남편,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다 알게 되면서도 히비키에 대해서 하나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돌아갈 곳이 아이와 남편이 있는 집이 전부라는 사실에 대해 화가나면서도 히비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모모와 남편과 아이들 역시 이를 당연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통해 유카의 행복의 기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히비키 엉망인 집안과 자신을 경멸하는 미쿠를 통해 자신의 뚱뚱한 몸과 피부를 보면서 자멸감에 빠진다. 간간히 히비키의 둔부를 만지면 화가 풀어질 것이라는 남편의 장면을 통해 히비키의 행복이 가볍게 소비해버리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른데 왜 외로움을 느낄까? 행복의 기준에 따라 살면 될 것을 우리는 왜 행복을 느끼지 못할까? 어쩌면 내 행복의 기준이 전부가 되어버리는 순간 다른 사람의 행복의 기준이 바보처럼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쿠가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유키가 딸들의 행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서로의 행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순간 거리고 생기고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벌거벗게 만들어 놓고 그들의 관계, 그들이 감정, 행복에 대해 분해시켜버린다. 마치 그들의 외로움이 그들의 탓이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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