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의 기록] - 여유들
유럽 여행을 처음 시작한 건 2022년 오십의 문턱에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다고는 할 수 있었지만 굳이 유럽 여행이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평생 해보지 않은 것이었기에 나름 도전도 되면서 일종의 로망도 가지고 있었기에 나름 기대도 되는 것이 나에게는 유럽 여행이었다.
나이가 오십 가까이 되니 우선 시간적으로 더 이상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적으로도 더 나이가 들기 전 한살이라도 젊을 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가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얘약을 해나가다 보니 왠지 부담이 되기도 했다. 굳이 유럽을 꼭 가야하나 싶었고 유럽 안간다고 큰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유럽 간다고 대단한 무엇이 있겠나 싶었다. 괜히 가서 힘만 들고 혹시라도 괜한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걱정도 들었다. 소매치니기 바가지니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사건은 여전히 성행 중이었고 익숙치 않은 언어와 인종차별 등 콧대 높은 유럽인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있다보니 신경이 쓰였다. 새로운 일을 하는 데 있어 어지간하면 겁이 없는 편에 속하기는 하지만 신경은 엄청 쓰는 편이기에 머리가 아파오고 마음도 무거워졌다. 괜히 사서 고생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이렇듯 저어한 태도는 나이탓도 있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이 나이게 굳이 뭘 하겠다고 하나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하자는 핑계를 대며 미루고 싶었다. 미루면 미룰 수록 가기가 더 힘들어질 것을 알면서도 이런 식으로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도 솔직히 있었다. 20년 전 젊을 때 안가고 뭐했나 싶었다. 그 때 갔으면 왠지 더 쉬었을 것 같고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했다. 그 때 못간 것은 다 이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애꿎게 탓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때는 더 젊을 때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될 줄도 몰랐다. 젊을 때에는 이상하게 나중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로지 지금만 있었다. 나이가 드니 자꾸 나중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을 생각하다 보니 더 늦기 전에 가야한다는 생각이 결국은 이기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걱정반 기대반으로 실행한 유럽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2만보씩 걸으면서 힘은 들어도 해내고 나니 역시나 더 늦기 전에 오길 잘했다 싶었다. 한없이 들뜬 수많은 관광객들에 둘러싸여 그들과 하나가 되어 걸어다니는 기분이 제법 특별했다.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아 마음은 한껏 부풀어올랐다. 한편으로는 이것저것 할 것도 많은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체력적인 한계도 있다보니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을 충분히 제대로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이 신기하기도 했다. 특별한 것도 별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무덤덤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유럽은 왠지 하나하나가 새로웠다. 그리고 이런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고 좋았다.
오십이 되니 어쩔 수 없이 나이와 자꾸 결부를 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생겼기에 또 다시 나이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지만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오십에도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한편으로는 오십이라서 가능한가 싶기도 했다. 더 어린 나이게 왔으면 분명 그 때도 좋았겠지만 이렇게 모든 것 하나하나가 새롭고 즐거웠을지는 의문이 든다. 오십이라는 세월을 살면서 먹는 것도 더 많이 먹어보고 관심사도 더 다양해졌으며 관련 지식도 더 많아진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듯이 분명 눈에 보이는 것들과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새삼 새롭기도 하면서 동시에 더욱 더 많은 것들을 흠뻑 흡수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만약 더 늦은 나이에 왔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 때도 물론 좋았을 것이고 체력만 따라준다면 더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십이라는 나이에 온 나 자신에게는 더 늦지 않게 온 것이 다행이라 여겨졌다. 새로운 활력을 느낀 동시에 무언가 새로운 목표가 생기고 더 많은 도전을 시도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도전과 목표를 이루기에 오십이라는 나이가 아주 적절하게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오십이라는 나이에 이 글을 쓰다보니 오십이라는 나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내 나이가 오십이니 오십을 기준으로 쓸 수밖에 없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해야겠지만 말이다.
무엇을 하기에 늦지 않은 나이, 오히려 무엇을 하기에 적당한 나이, 오십이라는 나이가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뭐든지 하고 싶고 뭐든지 좋기만 하다. 오십이라서 하고 싶고 오십이라서 좋다. 나에게 오십은 그런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