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의 기록] - 생각들
오십이 되니 새삼 점점 더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더 적을 가능성이 아주 높은데다 몸의 어딘가가 잘못되어 갑작스레 죽을 수도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오십 전에는 죽음에 대해 그리 생각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친척이나 가족이 죽어도 슬프고 안타까웠지만 나의 죽음과 연관짓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된 것 같다. 물론 점점 더 늘어나는 수명에 오십대나 육십대, 심지어 칠십대에 죽어도 이른 죽음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오십을 넘으니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엄마의 암 소식과 투병 생활, 그리고 엄마의 죽음으로 무엇보다도 아프게 다가왔다. 엄마의 암 소식을 듣고 엄마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무엇보다도 엄마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엄마라고 부르는 대상, 나의 엄마로 각인된 엄마의 그 모습이 사라지고 없는 것이 죽음인 것이다. 엄마를 보고 만지고 안을 수 없다는 생각은 이상하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엄마가 살아계실 때에도 멀리 떨어져 못보고 지낸 적이 많았다. 하지만 만나지 못해도 전화라도 했고 언제든 달려가면 그곳에 엄마가 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에게 엄마의 죽음은 막연하기만 했다. 내 눈 앞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고 돌아가셨을 때에도 축 늘어지고 차가워진 엄마의 몸을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고 여전히 엄마가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엄마의 부재는 엄마의 장례식 중간에 물건을 가지러 아무도 없는 텅빈 집에 들어선 순간 갑자기 내 마음을 강타했다. 이제는 집에 와도 더 이상 엄마를 볼 수 없다. 누구보다 먼저 반갑게 맞아주던 엄마가 없다.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던 엄마가 없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한결같이 내 편이 되어주리라 확신하던 엄마가 없다.
비로소 엄마의 죽음은 나에게 실체로 다가왔다. 엄마는 여전히 나의 마음 속에 남아있지만 엄마의 실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이것이 나에게는 죽음이었다. 엄마의 육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다는 것, 그것이 죽음의 의미였다. 엄마라는 존재가 엄마의 몸으로 나타났던 모든 순간들이 엄마가 살아있던 순간들이었다. 엄마가 웃고 만지고 음식을 만들고 걷고 손을 잡고 기도하고 말하고 먹고 자던 그 모든 순간들이 엄마의 몸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엄마가 암에 걸려 몸이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마음껏 움직이지도 못하고 먹지도 말하지도 웃지도 못하게 되는 과정들, 엄마의 몸이 말라가고 생기를 잃어가고 모든 것을 힘겨워하게 된 과정들, 더 나아가 너무나 아파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그저 고통을 느끼는 순간이 되어버린 과정들을 지켜보았지만 그 모든 순간에도 나는 엄마의 몸을 이리도 그리워하게 될 줄 몰랐다.
몸의 어디 한 부분만 불편해도, 어느 한 부분만 찢어지거나 가시에 찔려도 아프고 힘든데 몸의 모든 부분들이 망가져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수반하는 것인지 당사자가 아닌 이상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진통제를 맞아도 아픔이 가시지 않고 아픔을 온몸으로 느껴야하는 그 고통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어느 한 부인이 남편의 암과 죽음을 겪으며 전한 바에 따르면 정신을 잃고 쓰러질 정도로 심한 고통 속에서 그 남편은 마치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오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이 저 몸 속으로 다시 들어가 고통을 느껴야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죽음을 맞고 싶다며 안락사를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당시 시애틀에서는 안락사가 합법이 아니었다. 이 부인은 남편이 죽은 뒤 미국 시애틀에서 안락사가 허용되도록 하는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는 것으로 남편의 한을 풀어주고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했다. 그 결과 시애틀이 있는 워싱턴주는 2008년 미국에서 오레곤주에 이어 두번째로 안락사를 허용하게 되었다.
이 부인의 남편 이야기를 듣고 죽음이라는 것이 결국은 육체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토록 나 자신의 존재를 담아내는 육체, 이 세상과의 매개가 되어주는 육체가 기능하고 작동하고 생겨나고 자라고 쇠하는 그 모든 것들이 신비로움 그 자체인 것은 말할 것이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육체가 모든 기능을 다하고 작동을 멈추는 그 순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동안 수고해준 육체, 고맙고 소중한 육체와 결별하는 그 과정, 이것을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내 육체와 어떠한 이별을 하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다.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복잡하고 정교하게 움직이며 작동하는 나의 육체가 언제 어디서부터 그 기능을 점차 잃어가게 될지 도무지 예상할 수 없다. 다만 나의 육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이 순간이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고 부디 이 육체와 평화롭게 결별할 수 있기를, 이것이 나의 바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