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의 기록] - 생각들
오십이 되기 전까지는 정말 몸 생각 안하고 몸을 막 썼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한참 자랄 때는 쇠도 씹어먹고 젊은 시절에는 뭘 해도 다음날이면 멀쩡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아무 거나 먹고 무리해서 공부하고 일하고 놀면서 몸을 혹사시켰다. 그렇게 해도 되던 때였다.
그렇게 지칠 줄 모르던 몸이 어느 순간 삐그덕 대기 시작하고 급기야 이러다 큰 일 나겠다 싶은 때가 오십이 아닌가 싶다. 오십견이니 관절염이니 노안이니 흰머리니 주름이니 한꺼번에 몸의 여러 부분에서 신호가 오니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러다보니 부쩍 오십이라는 나이가 고비인 동시에 본격적인 쇠퇴의 길에 접어드는 노년의 시작인가 싶어 마음이 좋지 않다. 이 모든 일들이 갑작스럽게 다가오니 더더욱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도 않고 따라서 심란하고 속상한 마음 뿐이다.
하지만 사실 몸이 쇠퇴하기 시작하는 나이는 30대부터다. 아이를 낳고 회식을 하고 야근을 하고 야식을 먹고 하면서 우리의 몸은 더욱 더 노쇠하기 시작했다. 몸의 회복력이 예전같을 거라 생각하고 딱히 몸을 챙기지는 않고 계속해서 몸에 무리를 가한 것이다. 하지만 몸은 이미 예전과는 다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사가 지속되면서 우리의 몸은 다양한 방식으로 노쇠의 징후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배가 나오고 각자 몸의 약한 부분부터 증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나의 경우 편두통, 위경련, 무릎통증, 변비, 여드름 등 몸의 여기 저기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며 제발 몸에 신경 좀 쓰라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그 때는 몰랐다. 불편하기는 해도 일상 생활에 크게 지장이 있지는 않았다. 약을 먹고 병원에 가서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사실 병원에 간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특별히 이상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대부분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므로 쉬는 수밖에 없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 그저 증상 완화 외에 무슨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사실 우리 몸은 노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몸에 과부하가 생긴 것은 맞지만 우리 몸의 회복력도 서서히 쇠퇴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삼십대, 사십대부터 우리에게는 약이 아니라 식단 조절과 운동 병행이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는 몰랐다. 지금이야 '가속노화'니 '저탄고지'니 '제로음료'니 하면서 건강 관리에 대한 노력을 여기저기에서 설파하고 그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우리 때만 해도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물론 그 때보다 더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이 유행을 하고 음식 재료는 더 나빠지고 양념은 더 극단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야식 메뉴가 더 풍성해졌고 먹방이 인기가 있어졌고 외식이 잦아졌다. 그러다보니 건강을 챙기지 않으면 안되는 위기의식이 더 강해졌을 수는 있다. 그럼에도 실천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제서야 그동안 몸을 혹사시켰던 것을 떠올리며 지금까지 버텨온 나의 몸이 대견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제라도 몸을 돌봐야할 때가 된 것이다. 아니 더 늦으면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라도 시작하면 어느 정도 역전도 시킬 수 있고 최소한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기라도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우리의 몸이라는 것이 그 작동방식이 신기하기만 하고 그 신비로움의 원리는 알려진 바가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는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복잡한 원리와 방식도 모른 채 사용하고 있는데 사실 알면 알수록 더 신기한 것이 우리의 몸이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몸으로 평생을 살면서도 그 고마움을 생각해본 적은 오십이 되기 전에는 별로 없었다. 몸이 있어 비로소 우리의 실체가 존재하고 몸을 통해 많은 것을 하며 많은 곳을 간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곧 몸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나 몸에 소홀했는지.
몸의 의미는 사실 죽음으로 더욱 실감이 난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은 곧 몸이 제 기능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하고 결국은 모든 기능이 멈춘 상태다. 그것으로 우리는 죽음을 맞는다. 영혼과 사후 세계를 믿지만 인간의 존재는 몸으로 나타나고 몸으로 확인되며 몸으로 체험된다. 보고 만지고 걷고 느끼고 생각하며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다른 사람과 교류하며 행복을 만끽한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좋으면 얼싸안고 싶고 맛있는 것은 먹고 싶고 무언가를 노력해서 얻고 싶고 이곳저곳 다니고 싶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은 모두 몸이 있어 가능한 것이다. 이런 몸이 어디 하나라도 삐끗하면 우리의 삶의 질은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지 못하게 되고 작은 아픔으로 인해 비로소 신체적 고통이 없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몸은 사소한 것이 아니다. 몸을 하찮게 여기고 함부로 하면 그 댓가는 엄청나다. 하지만 이는 겪어보기 전에는 모른다. 알 수가 없다. 오십의 몸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이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갑자기 또는 서서히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으로 귀결될지 아니면 제 기능을 하도록 잘 관리해서 최대한 편안하고 자유로운 것으로 만들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오십의 우리 앞에 두 개의 길이 놓여있고 어느 길을 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몸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 또한 달라질 것이다. 오십의 몸은 결단이 필요하다.